내가 읽는 글이 내 삶을 결정한다

번아웃과 씨름해온 어느 아재의 반항

by 잉혀니즘

알코올, 니코틴, 도파민으로 점철된 20대 초반의 나는 꽤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젊음의 환희를 만끽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는 늘 마음 한 구석이 공허했다. 이것이 영원할 수 있을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때 느꼈던 공허함은 '삶의 부재'였다.


'삶'과 '경험'을 구분하지 못했던 나를 구원해 준 것은 책이었다. 나에게 책은 종교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책들의 제목을 보면, 조금 이상한 흐름이 감지된다.


1. 토요일 아침에 일어난다. 교양 있고 성숙한 시민이기에 강남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섹션을 구경한다. (취미가 코스프레인 것이다.)

2. [번아웃 어쩌구...] 이런 책들이 보인다. 공감된다. (원래 사는 건 피곤하다.)

3. 열심히 살아온 나를 위로하기 위한 책인 것 같다. 그 책을 집는다. (옆에서 다른 책을 구경하는 여성이 '지적이면서 열심히 살아온 저 남자... 멋있어...'라고 생각하는 상상을 해본다.)

4. 옆을 보니 [대충 살아보니 재밌다...] 같은 책이 보인다. 왠지 그래도 될 것 같다. (글쓴이는 책을 파니 괜찮겠지만, 너도 괜찮을까?)


사는 건 피곤하다. 감가상각이 시작된 뇌와 자가증식 제어가 고장 난 몸뚱아리가 의지대로 되지 않는 날이 많다. 우리는 이것을 두 가지 방식 중 선택할 수 있다.


1. '번아웃'이다 → 대충 살아도 된다 → 대충 살아버린다.

2. 열심히 작동했던 '몸의 신호'다 → 조금 쉰다 → 다시 열심히 산다.


차이점은 '피로'라는 동일한 현상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번아웃'이라는 단어는 뭔가 좀 단정적인 구석이 있다. 이미 끝나버려서 다시 되돌릴 수 없을 것 같다.

'몸의 신호'라고 해석하면, 쉬면 된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살아간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 쉴 때도 죄책감 없이 쉴 수 있다. 경험을 통해 다시 내 삶에 충실할 것을 알기 때문에.


과도한 경쟁에 지친 우리들에게 분명 '번아웃'이라 불리는 뇌의 부정적 작용이 있을 수 있고, 의미 있는 분석과 위로를 건네는 책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도 있음을 안다.

하지만 '번아웃'과 '대충'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져 나가고, 그 말들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나는 내가 읽는 글과 내뱉는 말이 나의 사고를 만들고, 그 사고는 선택으로 이어지며,

선택과 책임이 누적되어 안목이 되고, 그렇게 완성된 안목이 삶을 채우게 된다고 믿는다.


우리 사회가 '번아웃'(사실은 그냥 피곤한 것)과 '대충'(원래도 그렇게 살고 있었음)에 지배당한다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잘 팔리는 '트렌드'에 의해 삶이 결정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거나, 누군가의 생각대로 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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