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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Jan 08. 2019

1. 머리말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머리말’이라는 단어가 정겹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글을 정식으로 써본 적이 없어서 도무지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싶던 찰나에 생각난 챕터의 이름이 ‘머리말’이었다. 모두들 그래서 이렇게 맹맹하면서도 정겨운 단어인 ‘머리말’을 가장 첫 챕터에 넣는 것인가요? (아마 아니겠지)


 나는 에세이를 좋아한다. 실제 생활에서 그리고 타인과 저자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내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때문에 좋아하는 창작가를 알게 되면 그 사람이 쓴 에세이는 꼭 읽어보는 편이다. 그리고 그 책들은 내게 큰 위로와 울림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책들의 서문을 읽다 보면 보통 어떤 매체에서 주기적으로 연재 요청을 받고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그것들을 엮어 책으로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마 “ㅇㅇ작가님 이번에 저희 ㅇㅇ에 글을 연재해보시겠습니까?”라는 뉘앙스로 제안을 했으리라. 어쨌거나 이런 연재는 일단은 독자를 위해 기획되는 일이겠지만 하나하나 부담 없이 실에 꿰는듯한 활동 자체가 글쓴이에게도 큰 가치를 주는 일이라 생각이 든다. 또 그런 그들의 활동이 참 멋지게 느껴졌다. 자신의 일상적인 생각, 삶을 펼쳐놓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또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일이 내게는 참 흥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인의 삶, 생각들을 흥미롭게 읽어나가다 보면 “내 삶은 언제 이렇게 정리하고 조명하게 될까?”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 뜬금없이 아무 이력 없는 내게 그런 제안을 해줄리는 만무하고... 이런저런 억울하다는 마음과 알 수 없는 자기표현에 대한 욕구를 느끼던 중에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래 해보자. 바로 나 자신에게 연재를 제안하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나훔 씨. 전 김나훔입니다.

이번에 글을 한 번 연재해보시겠습니까?”.


 마침 나는 6년간 다녔던 회사에서 퇴사하였고 겸업으로 했었던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일을 이제 전업으로 해야 하는 제법 흥미로운(나에겐 아니지만) 상황에 놓여있었다. 겸업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회사가 겸업이었고 그림 작업이 나의 주업이 되길 꿈꿔왔었다. 제대로 프리랜서 작가로 정착만 되면 미련 없이 나의 겸업이었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예상보다 안정적인 프리랜서의 길은 험난했고 1년 정도 생각했던 나의 계획은 2년, 3년을 지나 어언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려버렸다. ‘걸려버렸다’라고 말은 했는데, 나의 프리랜서 생활이 안정됐기 때문에 정리를 했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점점 안정되는가 싶었던 프리랜서 작업 의뢰의 빈도는 시간이 가면서 다시 아래로 꼬꾸라졌다. 이대로 가다간 안정은커녕 진짜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나이만 먹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자체에 비전을 둔 것은 아니었기에 스스로 어떤 중대한 결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바라보니 어느덧 나는 서른 살이 되어있었다. 지금 이 시기가 무언가 정리를 하고 또 새로운 항해를 시작을 하기에 앞서 신발 끈을 다잡듯이 내 심적 상태를 기록하기에 적절한 시기라 여겼다.

안에서만 갇혀있던 감정들을 활짝! (2012)

 이렇게 적어 내려가는 글들이 정확히 어떤 종류의 글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여행기라고 하기에는 그 머물렀던 나라, 도시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내 심적 상태에만 집중해 적어 내려갔다고 하기에는 또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아예 제외하는 것 또한 아쉬워진다. 그동안 그려왔던 그림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내게 작가주의적 성향이 강한 작가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대중예술, 상업 예술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말하기도 했다. 주로 유쾌한 그림을 많이 그렸고 그로 인해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덕분에 기적처럼 지금까지 밥벌이를 하고 있지만, 그와 다르게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세상의 불편한 것들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그림들도 많이 그렸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크게 호응도 해주지 않았지만 어딘가 세상의 아름다움만을 음미하고 그리다 보면 마치 하루 종일 달달한 음식만을 먹는 것만 같은 기분이어서... 이따금씩 비판적이고 우리 삶의 어두운 부분 또한 그림으로 조명하고 싶었다. 이렇다 보니 한 감정선으로 글과 그림을 그려나가는 작가들이 존경스러우면서도 솔직히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일관성이 쭉 없는 것도 일관성이 있는 것이라 했던가.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 나인 것이다. 그런 극단적인 내 작업들에 우려나 불편을 표한 분들도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응원해주는 분들도 많았다. 나 또한 내가 하는 작업들을 과연 어떤 범주 안에 넣어야 하는지 그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가지치기해야 하는 것인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그런 현실을 받아들인 상태다. 어차피 이런 복잡한 감정으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부정하지 말고 내 이야기들을 담담히 쓰고 그려나가자는 생각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 거지. 이런 종잡을 수 없는 글을 쓰는 사람도 있는 거지. 왜 안돼? 그렇게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언젠간 다 쓸모가 있겠지 (정리 - 2018)



 지금 이 글은 베를린에서 쓰고 있고 오늘은 8월 30일 계절은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넘어가고 있다. 나는 18년 2월 3일에 베를린에 왔고 이 곳에 오게 된 이유와 또 이곳에서 느꼈던 나의 감정들을 이번 기회에 차근차근 써 내려가 보고자 한다. 예전에는 무언가 커다란 공감대나 감동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며 겁만 먹었었다. 하지만 되려 사람들은... 아니 우선은 나부터 나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의 소소한 삶의 순간들 속에 흥미를 갖게 되고 더 나아가 마음의 위로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한동안 유행했던 ‘힐링’이라는 말을 앞세워 뻔한 감동이나 공감을 구걸하고 싶지도 않다.(수년 전 대중들을 타깃으로 그림을 그릴 때, 그런 것들에 집착했었던 적도 있었다.) 천천히 내 생각의 발걸음을 솔직하게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 독자와 나 사이의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용기를 내 한 걸음 내디뎌본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과정들은 내 삶에도 활력이 되어 더 좋은 그림과 글로서 탄생할 것임을 확신한다.



영국 리치몬드 공원 (아이스크림 낙서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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