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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Jan 09. 2019

2. 인현동 인쇄골목 (1)

내 사랑 인현동 인쇄골목

 내 삶의 새로운 전환기, 새로운 여정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퇴사한 회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 시간들은 내게 단순한 경제활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앞의 글에서 퇴사를 했다고 언급 했는데, 6년간 다니기 싫은 회사에 다니면서 그림활동을 해온거냐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하기 싫은 일은 악착같이 안 하고야 마는 누구보다도 ’내 멋대로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6년간 회사에 몸을 담고 있었냐고 하면 바로 우리 회사의 김사장님 때문이다.

 그전 나의 20대 초중반의 생활을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컴퓨터 전공의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은 뜬금없지만 제과제빵과를 전공했다. 예술 계통은 돈이 없으면 못한다는 편견에 조금이나마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무 고민 없이 선택한 진로이다. 그러다 보니 역시 적성과 재능의 벽에 부딪혔고 뒤늦게 예술 계통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졸업 후 취업했던 레스토랑 일을 제외하고 사회생활이 전무하다시피 한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만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하나로 살아갔다. 그러다 보니 단체 생활을 하는 데에 늘 적응을 하지 못하기 일쑤였고 그렇게 변경한 직종 안에서도 이직을 밥 먹듯이 했다. 그리고 이직의 이직을 거쳐서 스스로 프리랜서 작가만이 나의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 누나 집에서 얹혀살고 있었는데, 학력도 경력도 없는 나에게 그 누구도 작업 의뢰라든지 어떤 제안을 해줄 리가 없었다. 내 능력과 재능을 확인해보기 위해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크고 작은 공모전에 출품했으나 전부 낙방했다. 더 이상 누나 집에서 밥만 축내는 백수로 살수 없었다. 겨울용 깔깔이를 입고 하루종일 하릴없이 방안을 어슬렁 거리던 한심한 내 모습... 끼니 때는 또 얼마나 빨리 돌아왔던가... 그렇게 겸업으로 할 아르바이트를 찾아보고 있었다.


 집에서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집 근처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곳들을 우선적으로 알아봤다. 이렇다 할 상권이 없었던 우리 동네에서 내가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은 피시방이었다. 담배 냄새는 싫지만 형편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여러 군데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봤다. 그런데 이럴 수가 결과는 전부 낙방이었다. 네 다섯 군데의 피시방에서 전부 떨어졌었는데, 이쯤 되면 아무리 낙천적인 사람이라도 ‘난 재활용도 안되는 인간쓰레기로 보이나 봐’라는 생각에 이른다. 정말 모든 피시방 사장들에게 비춰진 내 인상이 안 좋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그건 너무 슬프다.) 아마 나의 그림에 대한 과한 열정이 고용자의 입장에서는 탐탁지 않게 보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림을 배우는 사람이라든지, 퇴근 시간을 반드시 지켜주셔야 한다든지…. 그런 말들. 그렇게 불안에 떨던 방구석 백수는 자괴감에까지 빠져버렸다. 그렇게 망연자실한 상태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중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말투로 미뤄보아 노년에 가까운 남자의 목소리였다.


충무로, 인현동 인쇄골목 (2017)


“여기 충무로 인쇄골목인데 인쇄 관련 일 좀 해볼 텨?”
“어디서 보시고 연락 주신 건데요?”
“음 알바몬에서. 등록된 이력서를 보니까 컴퓨터그래픽스 자격증이 있던데, 면접 한 번 보러 올 텨?”


 어디 일손 부족한 중노동의 인쇄공장에서 연락이 왔나 보다..싶었다. 하지만 찬물 뜨신 물 가릴 처지가 아닌 나는 일단 면접이나 보고 생각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충무로 역은 어딘지 모르게 시끄럽고 부산스러운 분위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오늘 날에 비해서 인쇄시장이 활발했던 것 같다. (지금은 인쇄시장이 점점 죽고있어, 오래된 건물들은 전부 허물어지고 호텔이나 신축 사무실로 대체 되고 있다.) 아무튼 그렇게 사장님이 알려주신 회사 주소로 찾아갔다. 사무실에는 내 예상대로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중년과 노년 사이의 모습으로 보이는 사장님이 혼자 앉아계셨다. 나는 고용주가 (아마도) 듣기 싫어하는 말들을 또 시작했다.


“사장님 저는 정식 취업을 하러 온 게 아니고요.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온 겁니다.”

“그래 알았어, 못하면 알바고 잘하면 직원이고 그런 거지”

“아뇨... 알바에요. 그리고 저는 퇴근 시간을 지켜주셔야 해요. 저는 그림을 독학중이거든요. 꼭 지켜주셔야 해요.”,

“알았어~ 젊을 땐 열심히 시간 쪼개서 공부도 해야지”


어딘가 무심한듯한 태도였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 분은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일 바로 채용이 결정됐다.


 면접 보던 날 처음 와본 충무로 인쇄골목의 풍경이 떠오른다. 종이를 나르기 위해 불법으로 개조한 세 발 오토바이들, 요란한 인쇄기계 소리, 잉크 냄새, 화난듯 소리를 지르지만 사실 활짝 웃고있는 아저씨들... 처음 날 움추려들게 했던 낯선 풍경의 그 곳이 지금은 그 어떤 곳보다도 고향같은 장소로 마음에 남았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충무로, 인현동 인쇄골목 (2017)
회사 앞 충무로 역 근처에는 남산, 한옥마을이 있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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