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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Feb 13. 2019

동해바다에서 한 달 살기

휴식이 아닌 활시위를 당기는 일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강원도 고성이다. 지난달 2박 3일로 이 곳에서 묵었는데 여러모로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래서 장기투숙으로 이 달 한 달간 이곳에서 작업을 하며 지내기로 했다. 일반 1박 가격에 비해 장기투숙 시에 숙박비가 워낙 저렴해서 며칠 고민 끝에 이 같은 결정을 했다. 주인집 할아버지가 여든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신사적인 분이시고 지식이나 경험이 넓은 분인 것도 이 집에서 지내기로 마음먹은 것에 한몫을 했다. 좋은 스승이자 친구가 생긴 기분이다.


창을 열면 바로 앞에 바다가 있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의 목표를 잡았다.


1. 그림책을 완성할 것이다. 늘 생각만 하고 머뭇거렸는데 여기 있는 동안에 그림책 한 권의 시나리오와 그림을 완성할 계획이다. 아이도 어른도 읽을 수 있는 기발하고 재밌는 책. 주제는 아마 바다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은 미정이다. 어쨌거나 완성된 그림책을 읽을 때면 늘 이 곳의 풍경이 떠오를 것이다. 그동안 적었던 메모는 정말 많다. 그 안에서 제대로 된 내용을 낚아 올릴 생각이다.


2. 영상을 기록할 것이다. 여기서 생활하는 동안 그 모습을 영상으로 조금씩 기록할 생각이다. 바다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던지 거기서 그림 작업을 하는 과정, 생각 같은 것들을 남겨보고자 한다. 이런 삶의 방향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나도 이런 기록이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의미가 클 것이라 여긴다.


3. 체중조절. 한국에 와서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고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느라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특단의 다이어트 식단을 2주간 하기로 했다. 자몽이 이렇게 맛없는 과일이었다니…


4. 영어공부.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외국에 나가보니 한국은 동서남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으로 북한에 가로막힌, 일종의 섬이었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어쩔 수 없이 이런 환경에서는 생각이 보수적일수박에 없는 게 아닐까. 특히 창작을 하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더욱이 이런 환경에서는 창의력을 신장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영어를 공부해서 좀 더 넓은 세상에 나가 내 이야기를 펼쳐보고 싶다. 영어를 학교에서도 배웠지만 나는 부끄럽게도 한마디도 할 줄 모른다. 베를린에서 살 때도 이 부분이 참 부끄럽게 여겨졌다. 벌써 내 나이는 서른을 넘어섰다. 여기서 끈을 놓치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즐기며 해보고 싶다.




 아주 예전에는 수도권, 중심지에서 살아야만 뒤처지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좀 더 넓은 시야로 생각해보니 서울 또한 작은 섬에 있는 하나의 도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는 (특히 나 같은 프리랜서인 사람은) 어느 곳에 있던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으며 지식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앞으로 그런 경향은 더 심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기업은 점점 개인화되어 1인 기업이 늘어날 것이다. 도시에 집착하고 특정 지역, 학교만 특화를 누리는 시대 또한 점점 바뀌지 않을까. 정보는 점점 더 널리 공개될 것이고 지식과 기회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앞으로는 개인이 선택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내가 점점 시골로 후퇴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되려 정 반대라고 말할 수 있다. 좀 더 넓은 세계에 내 작업을 보여주기 위해서 소란스러운 곳을 떠나 나에게 집중하고 싶다. 더 넓고 먼 곳으로 내 생각을 알리기 위해 활시위를 뒤로 당기는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거창한 표현일까… 정리하자면 여기에 요양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확실히 설정하고 그에 따라 실행하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숙소는 원룸의 펜션이고 바로 앞에 바다가 있다. 아침엔 창문으로 이글거리는 태양이 뜨고, 방 안으로 눈부신 해가 들어온다. 하루 종일 파도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에겐 지긋지긋한 풍경이겠지만 (군생활을 바다에서 해봤기 때문에 안다.) 낯선 여행자의 눈엔 이 모든 것이 그저 행복한 풍경이다. 

나도 거기 올라가고 싶다.

원룸이긴 해도 여기는 있을게 다 있다. 포트기도 있고 심지어 구둣주걱도 있다. 우리 집보다 나은 것 같기도 하다. 머그컵이 없어서 다이어트 식단에 나오는 커피를 자기(?)로 된 컵에 먹었다. 이 컵을 보니까 냉면이 먹고 싶어 진다. 열전도가 심해서 컵을 들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가만히 보면 커피가 아니고 사약 같다. 



( 아, 위에서 말한 영상작업물은 유튜브에 업로드할 생각이다. 유튜버로 떼돈 벌겠다 그런 의지는 아니고 공개적인 곳에 글을 쓰면 내 생각이나 표현이 다듬어지는 것처럼, 영상으로 남기는 일 또한 내게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방향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


*아직 업로드 전이지만 링크는 아래

닉네임은 발걸음이 인도하는 대로 살겠다는 의미로 '나그네'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3vpsXx2AWfF8T0qzJ4-iQw?view_as=subscriber






전 날 밤에 커피를 마신 게 화근이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내친김에 뜨는 해를 보려고 했다.


구름에 가려 해는 뜨지 않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분위기가 또 좋았다.
안녕하슈, 오늘부터 여기서 한 달간 지낼 김나훔이라고 합니다.
언제나 내 곁을 지켜주는 캐리어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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