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천사
초등학생 때, 아침마다 학교에서 주는 흰 우유를 마시는 일은 당시 내 삶에 가장 큰 고민이자 마음의 짐이었다. 우유 특유의 비릿맛이 그 땐 왜 그리도 싫었는지... 맛을 느끼기 싫어 한방에 원샷으로 입에 털어넣을 때도 많았다. 그런 나에게 '우유는 급하게 먹지말고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영양분이 잘 섭취 된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은 소귀의 경읽기와 같았다.
그나마 아침에 먹는 우유는 시원한 편이라 다행이었다. 먹기 싫다고 미뤄뒀다가 오후에 마주하게 되는 뜨뜻미지근한 우유는 병원에서 받아온 가루약만큼이나 먹기가 싫었다. 어떤 날은 책상 서랍에 밀어 넣었다가 며칠 뒤에 상해서 발견하는 일도 있었고, 몰래 방과후 가방에 넣어서 하교길에 '우유폭탄'이라며 밟아 터트리면서 친구들과 깔깔대던 기억도 난다. (애는 애였구나) 하지만 그 곤욕스러운 음료를 행복의 미소로 바꿔주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옆 짝꿍이 챙겨 온 초코 네스퀵이었다. 약처럼 눈감고 꾹 삼켜내야 했던 그 고통의 흰 액체가 초코가루라는 마법의 약이 뿌려지는 순간부터는 행복의 음료수가 되는 일은 정말 놀라운 기적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반으로 줄여 나에게 나눠주던 그 아이는 내 눈에는 그저 천사 그 자체였다.
그래서 얼마 전 초코 네스퀵을 샀다. 어렸을 적 그 기억 때문일까? 네스퀵의 노랑 패키지는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이다. 오늘도 찬 우유에 네스퀵을 타면서 생각했다. 난 이게 지금도 맛있어서 먹는가 아니면 잊고 살던 '초등학생 시절의 나'가 그리워서 먹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