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hum Jan 31. 2019

밍밍한 맛

약하지만 강력한 중독

 흰쌀밥, 가래떡, 생라면(수프를 뿌리지 않은)이 좋다. 아무 맛이 가미되지 않은 그 밍밍하면서 씹을수록 느껴지는 맛이 좋다. 특히나 흰쌀밥을 참 좋아하는데, 물론 지은 지 얼마 안 된 것일수록 더 좋다.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된 때는 초등학교 여름방학. 강원도 이모 댁에서 며칠을 지내고 있던 때였다. 아마 놀다가 나 혼자 낮에 잠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눈을 떴을 땐 모두가 나가고 나 혼자 집에 남게 되었다. 심심해서 티브이를 한참 보다 보니 갑자기 배가 출출해졌다. 거실로 나가 냉장고를 열어봐도 먹을 게 없었고 전기밥솥을 열어보니 금방 만든 것으로 보이는 고들고들 갓 지은 뽀얀 밥이 모락모락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부엌에서 숟가락을 들고 와서 한 숟갈을 떠먹고 뚜껑을 닫았다. 밥을 천천히 씹으면서 다시 방 안에서 티브이를 보는데... 그 맛이 정말 좋은 것이다. 한 입만 더 먹자는 생각으로 다시 부엌으로 가서 밥을 한 숟갈 또 떠먹었다. 그리고 난 그렇게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밥통의 밥을 절반 넘게 먹어버렸다. (아마 그냥 한 그릇 떠서 먹었다면 그것보다는 덜먹었을지도)


 집으로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하던 이모는 도깨비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밥이 이거밖에 없었나??" 하고 내 쪽을 쳐다보았다. 난 왠지 크게 혼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느껴지는 시선을 외면한 채, 아무 말도 못 들은 척 티브이에 시선을 응시했다. 내가 맨밥, 생라면, 가래떡과 같이 밍밍한 맛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때부터 깨달았고 지금도 가끔 출출할 땐 이런 식의 식사?를 한다.


 어젯밤에도 생라면을 오랜만에 오도독 부셔먹으며 출출한 밤을 달랬다. 그렇게 면만 부셔먹으고 그럼 남은 가루 수프는 어떡하냐 물으신다면, 가끔 라면을 끓이다가 물 조절에 실패해 간이 싱거울 때, 국 요리를 시도했는데 이건 국그릇이 아니라 쓰레기통으로 가야겠구나 싶을 때 녀석은 긴급처방용으로 요긴하게 쓰인다고 말씀드릴수 있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은 볼륨의 라디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