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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Jan 30. 2019

작은 볼륨의 라디오

속삭임의 힘

 중학교 2학년 여름의 일이다. 방과 후 학원을 같이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학교와 학원을 가는 길 사이에 간단한 한자 쓰기 과외도 다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열심히 사는 친구였다.) 집에서 숙제와 공부를 미리 한 뒤에 학원에 들러 10분 정도의 시험을 풀고 나오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친구가 시험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안에는 보통 직원 한두 명이 상주해있었다. 그리고 어딘가 구석진 곳에서는 조용한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를 위해 집중해야 하는 학원에서 라디오가 웬 말인가 싶어 지기도 하지만 아마 그곳에서 근무하는 교사, 직원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리라. 그 라디오는 시험 보는 아이들에게는 방해가 되지 않을 수준의… 아주 작은 볼륨으로 틀어져 있었다. 모든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 음악에 집중해야 그 음악이 무슨 음악인지 알 수 있었다. 라디오 진행자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시끄러운 학교를 막 떠나 작게 속삭이는 그 라디오의 음악, 목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져서일까?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그 장소에서 들어와 눈을 감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나는 좋았다. 작게 속삭이는 라디오와 친구의 사각사각 연필 소리... 일종의 명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몸과 마음은 편안해졌다. 잠시 눈을 감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른해져 시험을 마친 친구가 나를 툭 치며 깨우기도 했다.


"뭐해? 다 풀었어, 가자!"



 몇 년 전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3주 정도 입원을 했다. 하루 종일 대화할 사람도 거의 없고, 오래간만에 적막한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멍하니 누워 천장에 있는 갈매기 모양의 패턴 개수를 세어볼 만큼 한가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때 문득 어릴 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몸을 일으켜 아이폰을 들고 MBC 라디오 앱을 다운로드하였다. 볼륨은 그때처럼 아주 작-게…

 텅 빈 시간과 공간.  그곳에서 들리는 작은 라디오 소리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줬다. 조금 산만한 광고가 나올 때는 그것이 나와 다른 먼 세계에서 분주히 살아가는 외계인들의 목소리처럼 들렸고, 진행자의 목소리만 들릴 때는 조그마한 요정이 내 귀에 차분하게 이런저런 비밀을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피력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소음 안에서 더 목소리를 높여 외치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위치에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방식이 더 쉽고 유용한 것은 아닐까? ( 실제로 친구한테 속삭이는 나를 상상해보니 조금 변태같아진다. )


 더 생생하고 좋은 음감의 음악을 듣고싶어 좀 더 좋은 스피커를 사기도 하는 나지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작은 볼륨의 향수를 느끼고 싶어 인터넷에서 파는 작은 라디오 하나를 싼 가격에 샀다. 막상 받아보니 기대한 것 이상으로 커서 조금 당황스럽지만 역시 그 시절의 향기가 나면서 기분이 편안해진다. 지지직 지직... 주파수 맞추는 소리.

 미래지향적인 것도 좋지만 나는 지나온 과거에서 무언가를 다시 꺼내보는 것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는듯하다. (심지어 그것이 기계이며 작동이 된다면 금상첨화!) 작게 듣는 라디오의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다면 한번 해보시길 추천드린다.



( 돈과 관계없이. 내 멋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라디오 진행자로도 살아보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진행 방식에 매력을 느낍니다. 하지만 막상 매일매일 일정한 시간을 진행해야 한다면 그것 역시도 생각처럼 간단한 일만은 아닐테죠. 그냥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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