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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Jan 25. 2019

공중전화

기술과 함께 묻혀지는 추억

 스마트폰 많이들 사용하고 계시는지? 지금 이 글까지도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일지도 모르겠다. 전화기 용도였던 핸드폰은 이제 Phone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수많은 기능을 가진 요술방망이가 되었다. 나 또한 엄청난 스마트폰 중독자다. 최근에는 SNS나 자극적인 뉴스를 보는 시간에  책을 보자고 생각을 했는데 그마저도 역시 전자책으로 결제하여 스마트폰으로 본다.(듣는다.)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 같지만 사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발전을 통해 변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도 또 거부할 수도 없다. 


 십여 년 전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을 이야기해본다. 당시에는 카메라와 MP3 기능이 결합된 소위 냉장고폰으로 불리는 통통한 휴대전화(핸드폰)가 대세였고 대략 학생들의 90%는 핸드폰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아마 99% 겠죠.) 나는 휴대폰이 없는 10%의 그룹에 속해있었다. 그 이유가 ’ 수업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게임중독을 피하기 위해서’인 집들도 있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냥 ‘가정형편이 어려워서’였다. 한번 조금 무리를 해서 구입을 하면 망가지기 전까지는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물건들과 달리 휴대폰은 가격도 비쌌지만 매달 요금이 나간다는 점이 내겐 큰 부담이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은 엄마 혼자 삼 남매를 어렵게 키우다 보니 공과금이 밀려 통신비를 내지 못해 전화, 인터넷이 끊기는 상황도 비일비재했다. 그런 여건에서 핸드폰은 당연히 내게는 사치품일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3학년의 한 선배 누나가 친해지고 싶다며 내게 휴대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저 핸드폰이 없어요”

“에? 핸드폰이 없다고?? 너 원시인이냐?” 


그 말을 툭 뱉은 채 선배는 유유히 사라졌고, 주변 내 친구들은 “원시인이래 푸하하”하며 깔깔댔다. 난 처음으로 그때 핸드폰이 없어서 부끄럽다는 감정을 느꼈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마음이 끌리는 이성친구를 알게 됐다. 우리는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가 집안 사정 때문에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우리는 그 후로 점점 관계가 소원해졌다. 그래도 친구가 전학을 간 뒤 얼마간은 계속 전화를 통해 서로 안부를 물었다. 물론 이때도 나는 핸드폰이 없었기 때문에 집 전화를 통해 전화를 걸었다. 좁은 집에서 네 가족이 함께 살다 보니 통화가 어려운 상황이 많았고 그럴 때는 안방에 가득 모아놓은 백 원짜리 동전들을 한 줌 쥐고 집 앞 공중전화 부스로 가서 통화를 했다. 늘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아직 그 친구에게 남아있는 감정과, 혼자 남은 공허함에 동전이 떨어져 삑삑 소리와 함께 전화기가 끊어질 때까지 그 친구와 통화했다. 그리고 더 동전을 챙겨 올걸 하는 아쉬움으로 집에 돌아왔다.


 이제는 많이 사라진 공중전화. 그래도 가끔 어딘가에서 공중전화기를 발견하면 혼자 추억에 잠긴다. 공중전화 부스 위로 쏟아지던 비, 달그락 거리며 떨어지는 동전 소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여  퀴퀴한 냄새가 났던 무거운 전화 수화기. 거기에는 다른 친구들이 갖는 편리함 대신에 뭔가 작은 애틋함이 있었다. 난 그 시절이 부끄럽지 않다. 되려 남들과 다른 시대의 끝자락. 이젠 정말 유물이 될지도 모르는 그 물건과 장소에  내 추억이 겹쳐있음에 감사한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내 생활의 모든 것들이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리해졌다. 또 거부할 수 없는 무서운 속도로 더 편리해질 것이다. 선생님 몰래 교실 끝에서 끝으로 전달하던 쪽지도 없어지고, 맘졸이며 편지를 기다릴 일도 이젠 필요가 없게 되어버렸다. 어디서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아련하게 누군가를 그리워할 이유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점점 모든 게 빨라지는 요즘, 어쩌면 조금은 원시인처럼 살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공중전화를 사용하고 50원 잔액이 남았을 때  다음 사람을 위해서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고 기계 위에 올려놓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죠. 다시 생각해봐도 참 따뜻하고 귀여운 모습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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