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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Jan 22. 2019

일본어

분수에 맞게 살자



 6년 동안 충무로에서 일을 했다. 중소기업이라 휴무날 대체자가 없다 보니, 장기간 휴가를 받는 것이 어려워서 늘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 여행을 갔었다. 회사가 일본을 거래처로 두고 있는 회사이기도 했고 함께 회사생활을 했던 여직원 친구가 일본어 전공인 덕에 나는 일본어를 아름아름 배울 수 있었다. 지금은 대략 5세 정도의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좀 경솔한 발언일까... 어쨌거나 2015년에 나는 혼자 오사카를 갔었다. 그때는 정말로 유아 수준의 일본어밖에 구사할 수 없었다. ‘어디입니까?’, ‘이건 뭐예요?’, ‘맛있네요’, ‘좋네요’ 정도의 말들이다. 그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오사카의 유명한 초밥집에 가기로 했다. 한국 여행객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현지인들 사이에 유명한 맛집이라는 정보를 갖고 떨리는 마음으로 방문했다. 가게는 10명남짓의 손님들이 가운데 세 요리사들을 둘러싸 앉는 바 형태였다. 좁은 가게에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하는 모습이 내겐 활력이 넘치면서도 귀엽게 느껴졌다. 긴장된 모습으로 이것저것 숙지해놓은 일본어를 사용해서 초밥과 생맥주를 주문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맛은 역시 훌륭했다. 


 그렇게 처음 시킨 초밥을 비우고 또 새로운 초밥을 시키려던 찰나에 내 왼쪽 옆으로 한국인 가족이 앉았다. 부부와 아들. 세 식구가 여행 중인 것으로 보였다. 자리가 협소했지만 내 옆으로 세명이 앉을자리가 되는 것 같아 “여기 앉으세요”라고 말하며 반대편으로 좀 더 몸을 붙였다. 그들은 메뉴판을 펼치고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조금 난처해하다가 영어로 주문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요리사 쪽도 영어는 영 신통치 않은지라 서로 떠듬떠듬 주문을 주고받았다. 마침 나는 준비한 일본어를 사용해서 또 두 번째 먹을 초밥을 주문했다. 옆에 있던 아이가 “이 아저씨는 일본어 잘하신다~”라고 말했다. 부부는 “그렇네 정말~”하면서 웃었는데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사실 으쓱한 마음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컸다. 일본어가 능숙한 사람이 들으면 코웃음 칠 정도로 내 일본어는 형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렇게 된 이상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능숙한 척’ 주문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세 번째 주문할 때에는 긴장감을 최대한 감추고 빠르게 일본어로 음식을 주문했다. 그렇게 몇 개의 초밥 그릇을 해치우고 나자 배가 엄청나게 불러왔다. “후- 이 정도면 됐어” 속으로 생각하며 나는 계산을 요청하기 위해 손을 들며 말했다.

“얼마입니까? (이쿠라 데스까? ikura desuak? )”

 이 말이 문제였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계산 부탁합니다 (오까이께오네가이시마스)”라고 하면 되었을 것을 나는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의미상 부자연스럽긴 해도 어쨌거나 의미 전달만 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요리사는 이해했다는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안도했다. 그렇게 부른 배를 두드리며 식당의 전경을 여유롭게 바라보았다. 이윽고 요리사가 내 앞에 무언가를 올려주었는데 그건 영수증이 아닌 새로운 초밥 접시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당황하여 분주히 메뉴판을 펴봤다. 이 메뉴는 연어알. 일본어로는 ‘이쿠라(Ikura)’였다. 심지어 내가 그동안 먹었던 초밥보다 더 비싼 가격이었다. “아...” 사태가 파악되는 순간. 마침 옆에 있던 한국인 꼬마는 내 초밥 그릇을 보며 “우와- 이건 신기하게 생겼다”라고 말하며 감탄했다. (그래 넌 참 리액션이 좋은 아이였지..) 

난 먹어야만 했다.

 ‘이쿠라 ikura’라는 단어가 내 입 밖으로 나온 것은 사실이고, 직원에게 자초지종 이 사태를 설명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내가 일본어를 잘하는 줄 아는 가족들도 있지 않은가. 난 그렇게 먹고 싶지도 않은 연어알을 배에 가득 넣었다. 그러고도 심지어 4조각이 남아서 잠시 멈춰 고민하고 있는데,
옆을 보니 마침 아이가 연어알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난 “괜찮으면 먹을래?”라고 말하고 남은 접시를 내줬다. 그렇게 겉으로 쾌남이라도 된 듯이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가게 밖을 나왔다. 하하하... 이윽고 스스로에게 치미는 부끄러움과 돈을 날렸다는 회한에 헛웃음이 나왔다. 평생 몰랐을지도 모를 '연어알'의 일본어를 꽤 비싼 값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숙소에 돌아온 그날 밤 잠에 들기 전 “정말 그 요리사는 잘못 들은 걸까...”, “이런 방식으로 여러 명에게 돈을 뜯은 건 아니었을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자기 분수에 맞게 그리고 솔직하게 살아야 나중에도 뒤탈이 없구나 생각하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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