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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훔 Jan 21. 2019

화분

식물이 주는 위안

(2017년 5월의 기록)


 두 달 전 극락조라는 식물을 종로에서 구입했다. 이런저런 고민도 많고 심적으로 삶의 만족도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 당장 내 마음이 그럴 수 없다면, 주변의 환경만이라도 바꿔보자는 심산이었다. 집주인도 혼자인데 화분까지도 친구가 없으면 외로울 것 같아 무리해서 똑같은 화분을 하나 더 구입해왔다. 극락조는 미관상 아름답고 공기 정화에도 효과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키운다고 한다. 그 부분도 화분을 사는데 한몫을 했다. 그렇게 화분을 한 달간 집안에 들여놓고 물도 주고 분무기도 잎에 뿌려주며 나름 열심히 돌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화분들은 한 주 한 주 날이 갈수록 잎 색깔이 노래지고 점점 말라갔다. 매일 바라보며 챙겨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자라나기는커녕 처음의 모습마저 잃어 가고 있었다. 일단은 나 자신을 위해서 산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 맥을 못 추리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자괴감도 들고 또 죄책감도 커서 서둘러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리고 극락조는 필요 이상으로 물을 주어서는 안 되며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어야 잘 자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집은 반지하라 햇빛도 잘 들지 않고 통풍 역시 좋지 않은 편이다. 때문에 그 말은 곧 화분들을 밖에 두고 키워야 한다는 말이 된다. 집안에서 키우려고 산 건데 집 밖에 내놓고 키우면 그게 무슨 의미람- 생각이 들었지만 식물들이 이 상태로 죽지 않고 잘 자라는 모습을 멀리 서라도 볼 수 있다면 그런 염려는 만족감으로 바뀔 것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 전부터는 식물들을 집 밖에 내놓고 가끔씩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겨주기도 하고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주기도 하면서 한 달 동안 극락조와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조금씩 보살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오늘 집으로 돌아와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풀이 죽어 오늘내일하고 있던 화분들이 어느새 내 허리까지 부쩍 자라 있는 것이다. 최근 대기가 탁했던 탓에 잎사귀에 먼지가 조금 쌓여있기는 했지만 두 화분은 모두 확연히 성장해있었다! 흥분되는 마음으로 두 화분을 집으로 들고 들어와 물수건으로 먼지를 깨끗이 닦아내고  두 달 전 올려놨었던 화분 받침대에 다시 녀석들을 올려놓고 천천히 한 바퀴를 돌려보았다. 그리고 난생처음 나 혼자의 힘으로 어느 한 생명을 성장시켰다는 사실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과 전율을 느꼈다. 

 화분에게 필요했던 것은 넘치는 물과 안전한 실내가 아니었다. 그보다 적당히 몸을 흔드는 바람과 가끔씩 적셔주는 물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그렇게 잘 자란 극락조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화분의 상황이 내 삶과 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 몸과 열정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나는 스스로에게 과한 물을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더 바쁘게', '더 많이', '더 잘..' 따위의 말들을 앞세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마저 스스로 묻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명은 이러나저러나 또 다른 생명으로부터 치유를 받는 법인가 싶기도 하고, 종종 이렇게 자연을 통해 삶의 작은 진리를 깨달은듯한 기분이 들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화분을 자라게 하고 화분도 나를 자라게 한다. 내일은 시장에 들러 더 큰 화분으로 아이들을 옮겨줘야겠다.





잘 자란 화분을 그려봤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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