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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Jul 09. 2019

내 집 장만, 빨리 이루기

(2019년 4월 11일)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랜만에 글을 쓴다’고 이전 글에도 썼던 것 같은데, 염치없이 또 이렇게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낯짝이 두꺼워진다는데 그 말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모두 건강하십니까 (보는 사람도 없지만 왠지 라디오 DJ처럼 멘트를 시작하고 싶었음.)


2월 초부터 3월 초까지 난 혼자만의 작업 시간을 갖기 위해 고성 한 달 장기투숙을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많은 계획들이 틀어져버렸다. 사실 그 틀어짐을 스스로에게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 미루고 또 미뤘다. 이제 많은 것이 정리된 상태라 (나름 용기 내) 글을 적어본다. 이 타이밍을 놓쳐버리면 영영 글을 쓰지 않을 것만 같은 싸한 기분이 들었다.


2월 초부터 시작했던 한 달간의 고성 살이, 그리고 4월 지금까지 약 두 달간 내겐 작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1. 집을 샀다.

2. 차를 샀다.


혹자는 로또라도 맞았냐 묻겠지만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쓸데없는 욕심을 내려놓았을 뿐.. 베를린에서 1년 동안 살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직장이 없어진 내가 굳이 비싼 집값의 서울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자연을 접하며 난 그동안 내가 너무 스스로를 음지에 가두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됐다. 또 노트북과 아이패드만 있다면 어디서든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반지하 집을 떠나 비교적 집세가 저렴한 지방(지상)으로 거처를 옮기겠다고 베를린에서부터 마음을 먹었다. 이제 빽빽한 주택가를 떠나 해와 바람, 나무, 산과 같은 자연을 곁에 두고 싶었다. 그런 것들은 공짜니까. 그렇게 나는 서울의 집을 빼기로 했다. (작년 베를린에 아무 목적 없이 갔었고 조금씩 살면서 계획을 바꿔 거주기간을 늘렸기 때문에, 난 1년간 내 짐을 보관할 수유리 집을 빼지 않고 있었다. 저렴하긴 했어도 꼬박 1년을 빈집 상태로 월세만 냈으니 되돌아보면 서울 베를린 이중으로 월세를 낸 스스로에게도 혀를 차게 된다.) 어쨌든 서울에서 KTX로 1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강릉’을 거처로 정했다. 10대 시절을 보냈던 속초와도 가깝고 바다, 산, 호수가 있는 지역이다. 어머니도 강릉에 계셔서 작년 잠시 한국에 있을 때 놀러 왔다가 이 도시에 매료됐다. 


어쨌든 장기투숙이 끝나면 다시 서울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 한 달 동안 고성에서 1시간 정도 거리인 강릉을 왔다 갔다 하며 집을 보러 다녔다. 그 결과 낡은 아파트를 대출을 받아 구입했고, 첫차로 중고차도 구입했다. 아파트는 생애 첫 주택구입자에게 정부에서 지원하는 제도인 디딤돌 주택대출을 받았다. (이런 상품명까지 굳이 언급해야 하나 싶긴 하지만...) 난 빚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인간이지만 이자가 낮고 아파트도 워낙 싸서 금방 갚을 수 있는 돈이라 생각했다. 참고로 아파트 이자를 4-5만 원 정도 낸다. 이쯤 하면 대충 아파트가 얼마나 싼 가격인지 예상 가능하리라. 처음 부동산 아줌마를 따라 아파트에 올라갈 땐 거의 교도소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날씨마저 을씨년스럽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 꼭대기…. 하지만 의외로 집안의 구조나 햇살, 주변 경관이 마음에 들어 지체 없이 계약했다. 물론 아파트의 낮은 가격이 가장 큰 결정 요인이었다. 강릉은 대중교통이 서울처럼 좋지가 않아서 소형 해치백 중고차도 구입했다. 이제 전시를 하거나 행사를 하게 될 때 내 그림을 차에 실어 나를 수 있게 됐다. 주택과 중고차 구입. 모든 것이 5일 만에 이루어졌다. 친구들은 놀리는 건지 축하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투로 ‘멋지다!’, ‘쿨하네!’를 연발했다. 이제 정말 빈털터리가 됐지만 이 결정에 조금의 후회나 두려움은 없다. 내 행복의 조건은 작업할 방과 책상 그리고 햇빛 드는 창. 이것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창작 활동에는 그리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어떤 이는 십 년 어쩌면 수십 년을 목표로 하는 집 장만을 적당히 타협해서 후딱 이뤄버린 셈이다. 이제 나는 나만의 목표를 좇는다. 그건 먹고사는 일에 과도하게 집착 않고 내게 주어진 매 순간을 나답게 창작하며 늙어가는 일이다. 풍족하게 살 순 없어도 적어도 굶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난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그리고 운이 돕는다면 이런 삶의 태도가 후일에 어떤 비범한 성과 또한 갖다 줄 것이라 조심스럽게 기대한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랄까... 그런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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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4월에 11일에 작성한 글을 옮겨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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