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hum Jul 12. 2019

뒤늦은 취미. 독서와 글쓰기.

'독서'와 '글쓰기'


 아, 나와 연이 없었던 단어. 자랑은 아니지만(당연하다.) 어릴 때는 독서에 취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도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책을 자주 읽어라' 라던가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다'.. 따위의 말들로 조언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들어왔지만 그건 따분한 세계에 갇혀있는 어른들의 미지근한 충고라 쉽게 여겼었다. 그러다가 20대 초중반 진로의 불안을 느끼던 시기에 시의적절한 책 몇 권을 우연히 알게 됐고 그렇게 조금씩 독서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로를 그림으로 정하고 나서 6-7년간은 회사생활과 개인 작업을 병행한다는 핑계로 또 한동안 책 읽을 시간을 많이 내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머릿속에 책의 내용을 넣기보다는 그동안의 성장환경 속에서 말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바깥으로 꺼내놓는데 재미가 들린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자잘한 감정이라던가 실생활에서 체득했던 인과관계에 대해 나름의 같잖은 정의를 내리는데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감기 같은 삶의 정체기가 또 다시 찾아왔다. ‘감기’ 같은 시기라고 하지만 당시엔 정말 생사가 걸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만큼 크게 앓았다. 그렇게 내 직업에 대한 고민, 먹고사는 일에 대한 염려 등으로 마음의 병에 걸렸을 때 다시 책을 들었다. 특히 삶의 전환기였던 베를린에서의 1년은 난생처음 수십 권의 책을 몰아 읽었던 시기였다. 한동안 닥치는 대로 인생의 축소판인 책들을 머릿속에 넣었다. ’ 문학을 접하면 밥이 나옵니까?’라는 질문에 ‘밥이 나오진 않지만 밥을 더 맛있게 만들어주죠’라고 답한 박웅현 선생의 말을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맛없던 삶에 다시금 온기와 다양한 맛들이 들이찼다. 가끔 타국 생활에서 느꼈던 일들을 간간이 글로 남겨보기도 했다. 그즈음에서야 글로 ‘삶을 기록한다는 것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마음을 잡고 책상에 앉아 글을 적는다는 게 처음엔 막연하게 느껴지다가도 무슨 말이든 쓰다 보면 계속해서 어떤 글감들이 떠올랐다. 이런 상황을 떠올리면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내 주위엔 또 다른 초 하나가 놓여있었기에…"라는 가사의 GOD 노래가 떠오른다. 어쨌든 최근에는 해왔던 그림, 사진과 더불어 글쓰기라는 취미랄까…그런 게 생겼다. (‘일’, ‘취미’ 혹은 ‘프로’, ‘아마추어’라는 말의 경계가 요즘 들어 더 긴가민가해진다. 일취월장한 아마추어도 있고 시답잖은 프로도 있어선가? - 뜨끔) 이 계정 또한 내 주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림’을 제외한 사진, 글과 같은 내 다른 측면의 이야기를 말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만든 공간이다. 일관성도 목정성도 없다. 그저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는 사소한 감정, 기억의 조각들을 집약시켜놓은 어수선한 아카이브 정도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부족한 글에 반응해주시는 분들에게 늘 감사하다. 무언가를 전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설령 지금은 잘 만들 수 없어도 ‘뭔가를 할 수 있는’ 때는 언젠가 반드시 온다고 생각하고, 그때까지는 현실 경험을 벽돌을 쌓듯 하나씩 소중하게 쌓아갈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말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이 기록이 그렇게 쌓는 내 나름의 소중한 벽돌 중 하나다.



 한 가지 고무적인 일은 한 달 전쯤 제법 이름이 알려진 출판사에서 글쓰기로 제안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몇 년 전  '대체 베스트셀러는 어떤 이유로 베스트셀러인 거야??' 생각하며 조금 삐딱한 태도로 책 한 권을 구입한 적이 있다. 다 읽고 나서 “음… 뭐 괜찮네” 생각하면서 머쓱해하며 책장에 책을 꽂아놓은 기억이 있다. 이번에 연락이 온 출판사는 바로 그 책을 출판한 출판사였다. 1년의 베를린 생활 동안의 내 기록들을 멀리서 지켜봤었고 이번에 재미난 기획 하나가 있어 그 프로젝트에 날 추천했다는 게 편집자분의 이야기다. 그동안 해왔던 그림이 아닌 온전히 글쓰기 만으로 들어온 제안은 처음이어서 더 기뻤다. 그림을 그리건 글을 쓰건 어떤 창작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정화되는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사람들은 그런 활동에 전부 박수와 갈채를 보내주지는 않는다. 과정에서 즐기고 있으니 그 이후의 일들은 전부 운이 결정할 일이라고, 그저 덤이라 여기자고 - 나는 작년부터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비워서일까 또 전혀 다른 성질의 기회가 운 좋게 찾아왔다. 힘을 빼니 되려 많은 것들이 내 곁으로 모여드는 듯하다. 내 몸과 맘이 딱딱하게 경직됐으니 세상의 모든 것들, 심지어 하늘의 구름과 들판의 꽃들 조차 돌처럼 죽은 듯 여겨졌던 게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그런 굳은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게 독서와 글쓰기였던 것 같다. 늦깎이 학생의 마음가짐으로 천천히, 부지런히 읽고 써야겠다. 




책 읽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저 사람도 자기만의 우주 속에서 뛰놀고 있구나 싶어져 한참 바라보게 된다. - 뒤셀도르프 (2018)



매거진의 이전글 내 집 장만, 빨리 이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