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hum Dec 28. 2019

로컬 호스트로 살아보기 (2)

주제넘게 에어비앤비 호스트로 살아보았다.

결국 슈퍼호스트가 되었다.



 앞선 1편에 이어서 이야기를 해본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끝내 슈퍼 호스트가 됐다. 성취의 원동력은 높은 수익률이나 조회수와 같은 혜택이라기보단 정말 그 ‘슈퍼호스트’라는 뱃지를 한번 달아보고 싶다는 소망 하나였다. 난 목표를 이뤘고 슈퍼호스트가 되고서 바로 숙소를 닫았다. .


 약 두 달 정도의 시간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노동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몇 년간 내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을 업으로 삼아왔다. 그 또한 손, 목, 허리, 눈과 같은 몸을 쓰는 일이긴 하지만 정신노동에 더 가까웠다. 그건 그거대로 참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숙박 제공의 일은 전혀 다른 성질의 노동이었다. 이불, 베개는 매일 새로 빨아야 했고, 창문을 전부 열어 바닥을 쓸고 닦아야 했으며 구석구석 금방 쌓이는 먼지들을 열심히 치워내다 보면 한 여름에 땀이 쏟아질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면 문득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어져 실소를 짓기도 했다. 게스트 몇몇분은 내게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잘들 가시게나… 허허허”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야할 것 같다.) 이건 마치… ‘임금님’이라고 불리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만큼 어색하기 짝이 없는 칭호였지만 그마저도 재밌었다. 특히 초반에는 많은 것들이 재미로 느껴졌다. 손님을 맞이한 뒤에 평점과 후기 그리고 숙박비를 받는 일련의 과정들이 마치 심즈나 롤러코스터 타이쿤과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후기를 보는 일은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내가 꾸며놓은 공간이 여행자의 시선에선 어떻게 느껴졌을지 무척 궁금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캡슐커피를 맛있게 마셨을까? 잠자리는 편했을까? 아침 창밖 풍경은 어떻게 느껴졌을까? 벽에 걸린 내 그림은? … 때론 불편사항에 대해서도 직접 물어보며 부족한 부분을 개선해 나갔다. 이런 얘기들을 할 때면 친구들은 “내 공간을 남이 쓰는데 찝찝하지 않아?”하고 종종 물었다. 그거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침구류야 빨아버리면 그만이고 전날 깨끗이 방을 치워놓으면 대부분의 게스트들은 방을 이전 상태와 비슷하게 치우고 나간 경우가 많았다. 부끄럽지만 되려 평소에 돼지우리 같았던 내 집이 어느 정도의 청결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데에는 에어비앤비의 공이 혁혁했다고 본다. (이 글을 쓰고 지금 방 풍경을 아련한 눈으로 둘러보며 “그래 맞아….” 하고 끄덕여본다.)


 특이한 내 이름 탓에 어떤 분들은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내 그림을 알게 되었다고 하거나, 나중에 전시를 하게 되면 꼭 보러 가겠다고 하신 분들도 있었다. 원하시는 분들에겐 엽서 몇 장을 선물로 드렸다. 만날 때 인사를 하고 헤어질 때도 인사를 나누고, 때로는 짤막하게 강릉에 이사 온 이유나, 여행에 대한 생각을 나눌 기회가 생길 때면 즐거웠다.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뜻깊었다. 몇몇 게스트 분들은 쪽지나 엽서에 제법 긴 편지 같은 것을 남기고 가시는 경우도 있었고, 먹을 것을 두고 가시는 분들도 있었다. 정말 오묘한 감정이었다. 혼자 방 안에 앉아 그림만 그리면서 지냈다면 절대 몰랐을 감정이다.


-

-

-

-


(아래는 에어비앤비 후기 발췌)


에어비앤비에 남겨진 후기들 (1)
에어비앤비에 남겨진 후기들 (2)
에어비앤비에 남겨진 후기들 (3)




쪽지 위에 사탕을 두고 간 손님





 하지만 역시 나는 내 일에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것도 느꼈다.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집은 한정된 게스트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글이나 그림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을 향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내겐 의미가 있다. 창작가에겐 오래도록 집중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필수적이다. 다만 그와 동시에 무언갈 이야기로 새로이 엮어내기 위해서는 창작가 개인의 다양한 경험 또한 필수라고 생각한다. 종종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나는 온몸이 촉수인 동물이 되고 싶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새로운 감각으로 세상을 보고 싶지만, 일상의 패턴에 갇히는 순간 그러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소소한 변화의 경험들이 앞으로의 작업에 밀알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생활비 보탬도 땡큐) 어쨌거나 그런 면에서 올 여름은 내게 재미난 방학 같은 시간이었다. 내년에도 이런 즐거운 여름방학을 보낼 의향이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





*에어비앤비 호스트체험기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