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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Dec 28. 2019

로컬 호스트로 살아보기 (1)

주제넘게 에어비앤비 호스트로 살아보았다.


뒤셀도르프에서 묵었던 숙소


 작년 유럽 생활 중 여러 지역들을 여행했었다. 그럴 때마다 숙박으로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다. 워낙 유명한 플랫폼이라 모르시는 분들이 없겠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호스트가 본인이 사는 집을 게스트에게 제공하여 숙박비를 지급받는 시스템이다. 호텔과 비교했을 때 정확성, 안전성의 측면에서는 메리트가 없지만 현지인들의 주거환경에서 하루라도 지내볼 수 있는 건 여행자에겐 큰 재미다. 실제로 쾰른에서 묵을 때는 호스트가 약속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일정이 지연되는 일이 있었다. 조금 짜증이 났다. 호스트는 ‘미안하지만 옆집에 사는 루마니아 아주머니에게 말해놨으니 거기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했고 나는 얼떨결에 쾰른에서 루마니아 아주머니와 단둘이 커피 한 잔을 할 기회랄까… 재밌는 추억이 생긴 일도 있다. 이처럼 약간의 불편을 감수한다면 충분히 현지 여행의 맛을 높일 수 있는 게 에어비앤비라고 생각한다. 좋지 않은 기억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억들은 대체로 좋은 편이다. 그래서 언젠가 나도 기회가 된다면 현지에서 여행객을 맞이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 ‘언젠가’가 당장 내년(그러니까 올해)가 될 줄은 몰랐지만...


 올해 2월. 강릉에 아파트를 계약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의 낡은 아파트이긴 해도 뒤로 소나무 숲, 앞으로 동네가 펼쳐진 풍경에 반해 망설임 없이 계약했다.  30년 가까이 된 아파트이다 보니 내부에 수리할 것들이 꽤 돼서 수중에 갖고 있던 돈을 털어버리다시피 했다. 그렇게 내 공간을 만들어놓고 보니 예전(작년) 에어비앤비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보잘것없어 보였던 공간을 내 나름으로 재탄생시켜 다른 사람에게도 느껴보게 하고 싶었다. 꼭 도심의 비싸고 현대적인 집이 아니여도 만족하며 살수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치기어린 마음도 있었던듯 하다. 또 그 시기에 전시 관련 출장이 잦아지는 시기였어서 일단 한번 예약을 받아보자는 생각이 들어 예약달력을 오픈했다. 숙소 제목은 ‘소나무 숲이 보이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작업실 훔홈’



 시대가 시대인 만큼 리뷰가 없는 내 숙소에 처음엔 예약이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예약달력도 전부 열어놓았다. (예약을 받지 않으려면 날짜를 선택해서 차단을 해야 한다.) 그러다가 첫 예약이 들어왔는데 게스트 분은 여성분이었다. 체크아웃 날 그녀는 “좋은 공간에서 편안하게 잘 이용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천장에서 뭔가 머리 쪽으로 툭 떨어졌어요”라는 문자,사진을 남겼다. 그건 동그란 화재경보기였다. 하필 그날 경보기가 게스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는 것이 나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즈음에 몰카 관련 흉흉한 뉴스가 많았는데 혹시 경보기를 몰카가 아닐까 하고 떼어내 본 게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물론 상상일 뿐이지만…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여자 혼자 리뷰하나 없는 남자의 작업실을 숙소로 이용하는 데에는 분명 용기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여행자의 마음을 놓아주기 위해 “풍경이 좋죠? 심지어 저희 집엔 몰래카메라도 없죠.”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경보기는 다시 못붙이겠어서 본드로 붙였는데.. 작동이 안될수도 있을 것 같다. 늘 불조심… 어쨌든 결국 답은 후기다- 생각 하고 열심히 후기를 쌓아갔다. 예약이나 리뷰가 쌓이면 슈퍼 호스트라는 직위랄까…등급이 생기는데 은근 그 타이틀도 욕심이 났다. 이런거 싫어하는데 막상 맛들리면 또 미쳐서… 어쨌든 예약은 점점 늘어갔다. 집 계약은 늦겨을에 했지만, 공간이 조금씩 완성되어갈 때쯤엔 어느덧 여름성수기가 되었던 것이다. 앱 상에서 알려주는 우리 지역의 평균 숙소 가격도 내 예상보다 훨씬 높아져있었고 예약을 거부하면 호스트 점수가 깎이는 탓에 나는 일단 게스트를 받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연스레 좋은 리뷰도 쌓여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미로 예약을 받기 시작한 일이 조금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우선 서울 출장 일정의 대부분이 급하게 정해지기 일쑤였고 그마저도 쉽게 변동돼버리는 통에 미리 달력에 출장일을 체크해서 예약을 차단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대부분을 열어놓았는데 성수기가 겹쳐 달력에는 꽤 많은 예약이 들이차게 되었다. 결국 난 아무 일정이 없는 날에도, 들어온 예약 때문에 노트북과 짐을 싸서 근처 엄마 집으로 향하는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다. 그놈의 슈퍼호스트가 뭐라고…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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