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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Nov 22. 2019

고향 같은 인쇄골목 '인현동'

오랜만에 인쇄골목


 몇 달 전 운 좋게 기회가 생겨 나라의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덕분에 혼자선 제작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적지 않은 수량의 엽서앨범과 포스터앨범을 제작하게 됐다. 그래서 인현동 인쇄골목에 가게 됐다. 시끄러운 인쇄소 소리와 잉크 냄새, 종이 냄새가 가득한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손수레를 끌고 인쇄물을 옮기던 반가운 기억이 떠올랐다. 골목 구석구석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차를 파는 할아버지도 오랜만에 보았다.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한방차같은 것들을 팔았는데. 나도 추운 날에는 따뜻한 인삼 벌 꿀물을 한 잔 시켜서 그자리에서 홀짝홀짝 마시며 손과 몸을 녹이곤 했었다. 오늘도 날씨가 영하권으로 떨어져 할아버지에게 오래간만에 인사를 하고 꿀물 차를 마셨다.




인쇄 감리를 보려고 인쇄소에 갔다. 원하는 색을 맞추기 위해서는 시간이 꽤 필요했다. 감리를 마치고 다시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사장님과 사모님 부부와 커피 한 잔(맥심 커피믹스)을 하면서 잠시 인쇄골목 얘기나 인쇄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림을 그리는 내 직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셨다. 최근 52시간 근무 관련 법안으로 인쇄골목의 사장님들은 고민이 많으신 모양이다.


6년간 충무로에서 일하며 쌓인 경험이 조금이나마 있었는지 인쇄하면서 겪는 다양한 변수와 문제에 대해 사장님과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분과 이런 대화가 이어진다는 사실이 나로서도 신기했다. 그러고 보면 회사에 다니며 그림일을 병행할 땐, 주업과 부업 따위를 나누고 시간 대비 효율 같은 것들을 따지며 늘 쫓기는 기분으로 산 것 같은데...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우열을 가릴 것 없이 내게 축적된 소중한 경험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완 달리 지금은, 스무 살 중반에 바로 전업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인쇄골목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종사자와 함께 호흡하며 몸으로 노동을 했던 몇 년의 시간이 정말 가치 있게 여겨진다.


처음엔 낯설고 소란스럽게만 느껴졌던 이 골목이 이젠 고향에 부모님 찾아뵙듯 기분 좋게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찬바람 속에서 따뜻한 햇볕을 맞으며 청계천 주위를 걸었다. 여름엔 필사적으로 피하던 태양을 다시 친구로 대하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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