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사거리 맥도날드의 기억
20대 초에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름 학업과 용돈벌이를 열심히 병행하던 시기였다. 난 방과 후 야간 조에 자주 포함되었기에 퇴근하고 나면 꽤 늦은 시간이 되었다.
그날도 일을 열심히 하고 퇴근하여 오늘도 뭔갈 해냈다는 기쁨에 묘하게 도취되어 난 도심 속 찬 공기를 가슴 깊숙이 들이마셨다. 일하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파 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지금도 맥도날드 햄버거 중에서 치즈버거를 가장 좋아하는 나는 단품 치즈버거 두 개를 구입했다. 늦은 주말 밤 매장 안은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 술에 얼큰히 취한 사람들로 붐볐다. 조금 쓸쓸한 마음도 들었지만 것보다 당장 먹을 치즈 버거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포장된 치즈버거를 품에 안고 매장을 나와 서둘러 버스를 탔다. 미아사거리(그때는 미아 삼거리였다.)에서 우리 집은 네다섯 정거장 정도의 거리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참을성 없게도 종이 백에 들어있는 치즈버거를 하나 꺼내 들었다. 겨울바람에 햄버거는 금방 식어버렸지만 작은 크기의 햄버거에서 느껴지는 깊은 풍미는 실로 대단했다. 금세 햄버거 하나를 해치운 나는 전투적인 기세로 두 번째 햄버거를 들었다. 이대로라면 집에 도착하기 전에 햄버거 두 개를 해치우고 집 앞 전봇대에 세워진 쓰레기봉투에 쓰레기 종이 백을 구겨서 쏙 버리고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그 순간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다. 두 번째 치즈버거에 패티가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안 그래도 얇은 치즈버거는 흡사 차에 밟힌 갈색 종이박스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나를 애석하게 바라보았다. 이 행복의 흐름을 칠칠치 못한 맥도날드 직원이 빠르게 인터셉트해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먹는 것에는 쉽게 감정이 상해버리고 마는 먹보 김나훔은 빠르게 걸음을 돌려 맥도날드를 향해 걷다가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생각했다. 치즈버거는 당시 내 기억으로 대략 1600-1800원 정도였다. 나는 이미 1000원을 내고 버스를 탔으며 다시 미아사거리로 돌아왔다가 다시 집 앞으로 돌아오는 차비를 생각하면 무작정 돌아가서 따지고 햄버거 패티를 받아오는 일이 뭔가 수지 타산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집 들어가는 길, 모텔촌 어귀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이 햄버거가 빅맥이었다거나 지금의 시그니처 버거 급만 되었어도 이렇게 고민할 일은 아니었는데... 그건 그렇고 지금 난 이 모텔촌에 서서 뭐 하는 거지.? 결국 걸음을 집 방향으로 돌려 그 건조하면서도 어딘지 허전한 치즈 버거를 입에 넣고 투덜대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 한동안 미아사거리 맥도날드에 가게 되면 아르바이트생들을 조금 원망 섞인 눈으로 힘주어 바라보았던 것 같은 기억이 있다. 아무튼... 지금도 치즈버거를 먹다 보면 그 시절의 감정이 떠올라서 한입 베어 물고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참 먹을 게 소중했고 순수했던 그 시절...’ 생각하며 미소 짓지만, 만약 지금도 치즈버거에 패티가 빠져서 나오는 일이 내게 닥친다면 그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난 몹시 예민해져 토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