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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Feb 29. 2020

여드름에 대하여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불청객

 중학생 때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 났다. 특히 2학년 때가 절정이었는데 학교는 남자학교였기 때문에 그렇게 큰 스트레스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학원이었다. 그 해는 어머니가 어려운 형편에도 조금 무리를 해서 내게 사교육을 시켰던 유일한 해였다. 학원에는 여학생들이 많았는데 쑥스러움이 많던 사춘기의 나는 그다지 그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하루는 학원에서 학생들이 시험문제를 보고 틀린 개수만큼 선생님께 딱밤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당시 나는 앞머리를 전부 내려서 이마 전체를 덮고 있었는데 친구들 앞에서 여드름이 난 이마를 까는 것이 정말 부끄러웠다. 안절부절못하던 나는 내 차례를 기다리다가 말없이 강의실을 뛰쳐나가버렸다. 부끄러운 옛 기억이다.


 세수도 열심히 해보고 온갖 여드름 관련 제품을 구입해 써봤지만 혈기왕성한 여드름을 막기란 불가능했다. 심지어 일본에서 대유행이라며 광고하는 ‘뻐꾸기 똥가루’ 성분의 클렌징까지 사용해봤다. 하지만 은은한 냄새만이 ‘이것은 틀림없는 새똥이군...’하고 생각하게 만들 뿐. 내 피부에는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욕실에서 나온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나훔아. 너가 엄마 피부를 닮아서 그래.

아무리 애써봐도 소용없어

그거 스무 살은 되어야 없어질 거야”


‘내 나이 열다섯… 앞으로 5년?’

요즘 말로 예민보스였던 열다섯의 나는 그 말을 듣고 방에 들어가 눈물을 훔쳤다.



 다행히 여드름은 2년 뒤인 고등학생이 되어 점차 잦아들었다. 약간의 흉터가 남은 곳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치열했던 여드름과의 전쟁은 어느 정도 끝이 났다. 다만 머피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요즘 들어 중요한 약속이 잡히면 꼭 얼마 안 남긴 시점에 얼굴 중심부에서 뭔가가 올라온다. 인터뷰 촬영, 친구 결혼식, 송년회 등... 중요한 행사가 임박했을 때 늘 그렇다. 이마 혹은 코 쪽이 유난히 붉다 싶으면 어김없이 그 중심으로 거물급 여드름이 몸을 일으켰다. 


 아슬아슬하게 날 위협하던 여드름은 결국 인생 최대의 중요한 날마저도 짓궂었다. 바로 결혼이었다.

 결혼식 전. 청첩장, 앨범 제작을 위한 사진 촬영 일정이 있었는데 얄미운 여드름 하나가 또 눈썹 사이 정중앙에 터를 잡았다. 안경을 벗으면 흡사 정동남 선생님의 모습 같았다. 며칠을 벌벌 떨다가 운 좋게 촬영 당일 아침에 사그라진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이 문제였다. 이번엔 여드름이 아내의 턱 쪽으로 옮겨 붙었다. 일주일 전부터 실하게 영근 녀석이 턱 쪽에 자리 잡고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 이후로 여드름에 관해선 의학을 믿지 않게 된 나는 그냥 곪을 때까지 두었다가 나중에 짜자고 했고, 아내는 일단 짜고 나서 약을 바르겠다고 했다. 결국 아내는 그렇게 했고 예식날은 다가왔다. 


 우리는 무대 앞에서 하객들을 바라보았다. 예식은 야외에서 진행되었고 내가 셀프로 사회까지 보았기 때문에 긴장감은 배가 되었다. 난 고개를 돌려 덩달아 긴장한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내의 턱 쪽에 붉은 여드름을 발견했다. 조용히 아내에게 속삭였다.


"얘가 아직도 있네? 하하"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마치 익숙한 존재가 내 옆에 있다는 편안한 느낌이 들면서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셋... 은 성공적으로 결혼식을 치렀다. 결혼식 사진을 나중에 보니 높은 메이크업, 카메라 기술 덕분에 아내의 여드름은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잘 커버되었다.


 그럼에도 중요한 날이면 불쑥 치고 올라오는 여드름. 정말 스트레스다. 짜도 걱정이고 둬도 걱정인 아주 골치 아픈 녀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엔 심상치 않은 크기의 여드름이 올라오는 것을 감지할 때면 ‘혹시 내가 잊고 있던 약속이 있지 않은가’하고 달력을 열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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