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 '계획은 없습니다.'
*저는 작년부터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는 초보 글쓴이입니다. 글쓰기는 이제 막 본격적으로 시작했지만 그림은 9년째 그리고 있는 그림쟁이이기도 합니다. 브런치에서 다루는 글의 감정선은 제 그림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브런치에도 제 전시 소개와 전시노트를 공유합니다.
합정, 상수역에 위치한 ‘아트아치’에서 개인전을 시작합니다. 3년간 서울, 베를린, 강릉으로 거처를 옮기며 느꼈던 여행의 순간들을 기록했습니다. 새로운 6점의 그림을 포함하여 총 33점의 작품이 전시됩니다. 전시는 오늘부터 3월 29일까지 3주간 진행됩니다.
좋지 않은 시국에 전시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전시 공간은 매주 방역소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관심 부탁드립니다.
장소 : ARTARCH (서울 마포구 독막로9길34 아트아치)
(*주차공간이 없으므로 대중교통 이용 부탁드립니다.)
전시기간 : 2020. 3. 4 (수) - 2020. 3. 29 (일)
관람시간 : 11:00 - 20:00
*3월 3-6일 아래 링크를 통해 사전 관람 신청 후 방문하시면 관람료(커피) 30% 할인 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링크 : bit.ly/2PGXmjo)
초등학생 때, 방학이 임박하면 담임선생님은 언제나 방학생활계획표를 그리는 과제를 내주었다. 그러면 난 동그란 시계 모양을 그려 아침에 눈 뜨는 시간부터 잠드는 시간까지 피자 조각 나누듯 경계선을 그어가며 시간을 나눴다. 머릿속으로 제법 고민을 해가며 색칠도구들을 사용해 색을 칠하고 예쁘게 꾸몄다.
하지만 방학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내가 짠 '성실한 초등학생의 계획들'은 실천되지 못했다. 내가 상상한 이상적인 나의 모습과 현실의 내가 그만큼 달랐기 때문이다. 방학이 끝나고 계획표를 잘 지켰냐는 선생님의 말에도 나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과 비슷한 일들은 또 벌어졌다. 나는 내가 속한 분야에서 나름의 거창한 미래 계획들을 세웠지만 많은 것들이 내 이상과는 달리 어그러지고 말았다. 절망적이었다.
그즈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치듯 베를린으로 떠났다. 이제 난 계획은커녕 마음의 문 마저도 굳게 닫아버리고 말았다. ‘어디 얼마나 제멋대로 돌아가는지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입을 닫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 비뚤어진 예상과는 달리, 조금씩 내 마음의 반대편 방향으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계획한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놀라운 세계였다.
기적처럼 지구 반대편에도 내 그림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큰 계획이나 염려 없이도 웃고 만족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직위나 돈, 순위, 성취 같은 것들로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보았다. 내가 생각한 기준, 내가 정한 계획이 이 무한한 가능성의 세상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내 초등학교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방학생활에는 잃어버린 생활계획표보다 더 신나고 두근거리는 일들이 가득했다. 내가 그린 생활계획표에는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옆동네 개천에 가서 몸을 던지고 헤엄치는 일이 없었다. 엄마를 따라 갑자기 할머니 댁으로 가는 일도 없었고, 그곳 개울에서 놀라울 정도로 커다란 가재를 만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 일들은 계획표에는 없던 일종의 '사고'였지만, 어찌 보면 놀라운 발견이자 평생 가슴에 남을 행복의 순간이었다.
계획이 없다는 것은 정말 부정적이고 무책임하기만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