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버스 안에서 생각해보는 '이해'
강릉에서는 늘 차량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 시내에서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을 할 때는 왠지 여행을 하는듯한 낯선 기분이 든다. 늘 사람과 부대끼는 삶에 피로를 느낀다고 여겼지만 오랜만에 이렇듯 바쁘게 살아가는 인파 속에 들어오면 또 그 나름의 활력이 내 안에 들어오는 기분이 든다.
10년 전,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온 고향 친구가 “지하철 타서 앉으면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눈을 어디에 둬야 하나?”라고 묻던 말이 떠올라 속으로 웃는다.
어쨌든, 며칠 전 버스를 타고 개인전이 진행 중인 인사동의 갤러리에 가고 있었다. 그날도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과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할아버지!!! 차가 서면 일어나셔야죠!!” 하고 쩌렁쩌렁 울리는 버스기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는 그 소리에 소스라치듯 놀라며 큰소리로 받아쳤다.
“차가 거의 섰으니까 일어났지!!! 왜 소리를 질러!?”
“완전히 서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일어나니까 다치는 거 아니에요!!”
“다들 그 정도에는 일어나잖아! 당신 나랑 싸우자는 거야 뭐야?!”
“다칠뻔했잖아요!”
두 사람은 곧 멱살이라고 잡을 듯 몹시 격양된 목소리로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상황을 천천히 보니 할아버지가 버스 정차 전 급하게 일어난 탓에 몸의 중심을 잃을뻔했고 덩달아 놀란 버스기사님도 할아버지에게 큰소리를 치며 화를 내게 된 것이다. 버스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정차 전 급하게 일어난 할아버지에게도 문제가 있었고 승객이 놀랄 만큼 버럭 하고 소리를 친 기사님에게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결국 할아버지의 안전을 위해 주의를 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 이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은 불쾌한 상황인 걸까. 어쩌면 조금 거칠긴 했어도 따뜻한 배려의 현장은 아닌가- 싶어졌다.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며 묘한 분위기가 서서히 흩어지는 것을 지켜봤다.
목적지였던 충무로역에서 버스는 정차했고 내가 내릴 때 할아버지도 함께 내렸다. 정차 후에 천천히 일어난 할아버지는 내리기 전 버스 기사에게 “수고해요.”라고 말을 했다. 버스기사님도 “안녕히 가세요~”라고 응답했다. '아마 침묵의 시간 동안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과 약간의 고마운 마음도 싹트지 않았을까?' 하고 난 생각했다. '사람에겐 역시 생각할 시간이라는 게 필요하구나' 싶었다.
씩씩거리다 보면 그 본질을 잊게 될 때가 있고 그 불쾌가 내 안을 맴돌아 바깥으로 언어로든 공기로든 표출된다. 반대로 천천히 끄덕끄덕거리다 보면 일단 그 행위 자체가 방문을 열어놓는 효과가 있어서 일종의 환기가 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격한 공감까지는 아니어도 작게나마 이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요즘 들어 스스로 그런 훈련을 하고 있다. 여러 상황들 속에서 천천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기분도 훨씬 좋아진다. ‘이해’라는 것이 안으로 무언가를 받아들이다는 것인데 그 말과는 반대로 훨씬 내 안을 비워낸 듯 가벼운 기분까지 느끼게 만든다. 더 많은 부분에서 이런 태도를 갖고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