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남편과 디자인하는 아내, 신혼부부의 강릉살이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온라인 공간일 뿐이지만 왠지 낯선 공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글로 생각을 적는 일은 항상 즐거운 일이며 내 행복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행위이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모니터 앞에 앉았다. 유튜브에도 영상용 기록을 올려보려했지만 역시 글 쪽이 나에겐 더 편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간만에 글을 적기 시작했으니 늘 그랬듯 핑계를 대는 것으로 시작을 해야겠다. 나와 아내는 올해 봄 결혼을 했고(이에 대한 얘기도 조만간 다루고 싶다.) 오늘로부터 3일 전, 강원도 강릉 교동시에 작은 공간 '오어즈'를 오픈했다. 이 공간이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될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그림이나 글 작업에 꾸준히 집중하지 못했던 것은 이 공간을 꾸리는데 비교적 많은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정말 부족했느냐고 묻는다면 절반은 맞고 절반을 틀리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가만히 있을 때도 머릿속이 복잡해져 이래저래 내 작업에 온전히 집중할 정신이 생기지 않았다. 어쩌면 내 창작의 연료는 몸도 정신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온전히 게을러진 상태' 그 자체가 아닐까 싶어 진다. (이렇게 적으면서도 한심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게 되지만) 이 공간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미약한 시작점에나마 우리의 준비과정과 마음가짐 따위를 간단하게 기록해둘 필요성을 느껴 몇 자 적어본다.
공간을 계약한지는 벌써 4개월이 지나 5개월째로 넘어간다. 그리고 우리는 코로나로 세상이 뒤숭숭한 이 시점에 결국 인원 제한 입장이라는 방식으로 가오픈을 하기로 했다. 결혼을 하기 며칠 전에도 이 망할 코로나의 숨통이 언제쯤 꺼질까 노심초사 기다렸는데 연말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 어둠의 손길은 우리 사업에 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2020년은 절대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이후 펼쳐질 지구의 미래는 과연 아름다울까 생각해보면 쓴웃음을 짓게 된다. 내년에는 에르메스 마스크라던가 나이키 산소통 같은 제품이 쏟아지는 건 아닐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어쨌든 다시 공간 이야기로 돌아가 처음 이 공간과 연을 맺게 된 날의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신혼집도 없이 결혼을 한 우리는 좁은 집에 대책 없이 쌓여가는 그림들의 정도가 지나쳐 저렴한 월세의 작업실 겸 창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에서 매번 그림을 들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7월 31일, 아내와 테니스를 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빨갛고 두꺼운 글씨로 ‘임대’라고 적힌 2층의 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그 전에도 창문을 가득 채울 정도로 두툼하고 커다란 그 글씨를 지나친 적이 있었지만 그 크기만큼 임대료 또한 우리가 커버하지 못할 정도라고 쉽게 여겨 몇 번을 지나쳤던 곳이었다. 못 먹는 감 찔러나보자는 심정으로 난 부동산에 전활 걸었고, 공간을 보고 나서 그리고 가격을 듣고 나서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하자고 결정했다. 아내는 살짝 당황했고 나도 뭔가에 홀린듯한 느낌으로 결정을 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왠지 강하게 들었다. 우린 둘 다 땀에 젖은 운동복 차림이었고 심지어 지갑, 신분증도 두고 왔던 터라 집에 들러 나중에 다시 갖고 왔다. “일단 실행하고 어떻게든 우리가 그 결정을 옳게 만들면 돼”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늘 말 만은 청산유수.)
저렴한 가격에 비해 넓은 공간과 따뜻한 햇살을 보고 처음 우리는 그저 신이 났다. 더불어 창고의 용도를 넘어 그림을 벽에 몇 점 정도는 걸어놓고 사람들이 구경하러 오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이 깊어진 것은 냉난방에 대해 생각하면서부터다. 무더운 여름 혹은 추운 겨울에 사람들이 그림을 보러 오려면 최소한의 실내온도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시공도 되지 않은 낙후된 2층 공간에 30평형 냉난방기를 덜렁 들여다 놓았다. 당근마켓에 괜찮은 가격의 물건이 떠서 급하게 거래한 것이다. 창틀을 보니 덕지덕지 끈적거리는 스티커 자국들이 넘쳐났다. 오래된 건물의 벽면 페인트는 조금만 손을 대도 각질처럼 벗겨졌다. 페인트 도장 작업을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시공자분께 부탁드렸다.
이렇게 된 이상 이 공간은 단순히 월세만 내면서 창고처럼 사용할 수준의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우리는 그동안 생각만 하고 실행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차근차근 실행하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페달을 무작정 한 번 힘 있게 밟고 나니 그 이후에는 그다지 큰 용기를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이런 간단한 메커니즘을 알면서도 항상 까먹고 다시 겁을 먹어서 문제다.)
나는 이전에 내 그림을 ‘다양한 포맷으로 인쇄, 제작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대형 인쇄회사 팀장님의 감사한 제안을 받아들였고 혼자서라면 결코 시도하지 못했을 수십 종의 인쇄물을 제작했다. (예전 같았다면 보관 문제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는 평소 즐겨마시고 관심 갖고 있던 내추럴 와인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또 남대문 혹은 동묘에 나가서 자기 취향에 맞는 여러 물건들을 알아보고 구매도 했다. 그렇게 오픈 시점이 되어서는 전시를 위한 그림뿐만이 아니라 소품, 식기, 와인 몇 종류가 공간을 채워나가게 됐다.
공간을 채워나갈 작품, 제품들도 고민거리였지만 우리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이 공간을 정의하고 세상에 알릴 브랜딩의 문제가 더 큰 고민이었다. 내 그림과 아내의 디자인, 인테리어를 잘 융합시켜 하나의 이름을 정하고 다듬어 외부에 내보이는 일은 두근거리는 일이면서 동시에 걱정되는 일이었다. 우린 각자의 취향이나 고집도 있는 편이라 더 그랬다. 아이디어가 없다기보단 너무 많아서 그 안에서 사용성, 희소성 등... 을 고려한 최적의 무언가를 결정을 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의견과 조언이 있었고 우리가 객관적으로 사고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최종 사업명으로 결정된 ‘오어즈(Oars)’는 간판을 제작하기 하루 전 급작스럽게 정해졌다. 한 달 전부터 나름 고민 끝에 정해진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의미와 기발함에 비해 사용성이나 가독성의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내가 오어즈라는 새로운 단어와 의미를 내게 던져주었고, 나는 이름과 그 영문 스펠링을 보자마자 ‘이거다!’ 싶어져 환호를 했다. 우리 부부는 그 단어에 아무 이견이 없었고 그렇게 정해졌다. 엄마의 단팥죽 가게 상호를 지을 때처럼 이번에도 아내의 네이밍 센스는 빛을 발했다.
Oars(오어즈)는 노 젓는 사람들에게 행동을 멈추고 노를 수평으로 유지하라는 구령이다.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물결에 몸을 맡기듯 편안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을 보트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청첩장에도 배를 타고 떠나는 남녀의 그림을 그렸고 그것을 크게 인쇄해서 식장에도 걸어두었다. 이런 기획에는 김반장의 ‘Boat Journey’라는 노래가 큰 영감을 주었다. ‘목적지는 없지만 목적은 있는 삶’이라는 가사 또한 고스란히 우리들의 마음에 들어와 삶의 커다란 슬로건으로 자리 잡았다. 전달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기회를 빌어 김반장님과 그의 짝꿍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 노래의 가사를 글 말미에 첨부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오어즈라는 이름의 구령은 우리 삶의 방향과도 매우 닮아있어서 좋았다.
O a r s 라는 영어 조합도 마음에 들었다. 시각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해 보였으며 아내는 글자의 위아래에 노와 물결을 상징하는 그래픽을 넣었다. 오어즈는 초록색과 파란색의 조합을 디자인 컬러로 했다. 녹색은 강릉의 들과 산을 상징하고 파란색은 호수와 바다를 상징한다. 작년 봄, 무작정 서울에서 강릉으로 이사를 오게 만들었던 매력포인트를 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렇듯 ‘계획 후 계약’ 순서가 아닌 ‘계약 후 계획’ 순으로 일을 진행해나가다 보니 이런 공간에 과연 사람들이 찾아올 것인가- 하는 의문이 뒤늦게 고개를 든다. 오늘로 오어즈 가오픈 3일째. 그래도 우리의 예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찾아주었다. 아직 여러 부분에서 부족하기 때문에 방문객들에게 공간을 설명할 때면 어딘지 부자연스러워진다. 하지만 애초에 ‘강릉을 대표하는 갤러리. 혹은 멋진 기념품 샵’과 같은 거창한 포부가 없었기에 우리는 힘을 빼고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아내도 나도 과하게 긴장하고 힘이 들어가면 되려 잘하던 것도 망쳐버리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어영부영 우리의 공간이 시작됐다. 난 살면서 갤러리를 운영할 생각도 없었고 장사를 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가 오어즈의 출입문을 마주 보고 방문객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막상 주사위가 던져지니 아내의 머릿속에는 여러 아이디어와 재밌는 기획들이 마구 떠오르는 모양이다. 늘 완벽을 추구하며 머뭇거렸던 아내인데 이런 활발한 모습을 보니 그동안 속으로 미안해했던 감정들이 전부 기쁨과 행복으로 치환된다. 신혼집도 없이 덜컥 나를 따라 강릉으로 내려와 준 아내에게 늘 고맙게 생각을 한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가다 보면 또 예상 밖의 새로운 문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때 우리가 열어온 문들을 뒤돌아보며 오늘을 떠올릴 수 있게 글로써 표시를 해둔다.
[ 김반장 - Boat Journey ]
왜 나는 구분 지어 살아왔나 일상과 여행
스쳐 지나갈 수 있던 사람이 내 옆에 내 곁에 있을 때
오 나는 느낄 수 있어 서로가 타고 오던 흐름을
우리의 배는 흐르고 흘러 이렇게 여기까지 왔다네
너와 나의 Boat Journey 삶의 결을 따라서
함께 하는 이 여행 더 멀리 더 깊이
너와 나의 Boat Journey 북두칠성을 따라서
함께 하는 이 여행 우리 한배를 타고
우리가 함께 하는 이 배는 아직은 너무 작아서
흔들리거나 부딪칠 때도 많지만 여전히 흘러 흘러 간다네
너와 나의 Boat Journey 삶의 결을 따라서
함께 하는 이 여행 더 멀리 더 깊이
너와 나의 Boat Journey 북두칠성을 따라서
함께 하는 이 여행 우리 한배를 타고
잔잔한 날엔 잔잔히 몰아치는 날엔 손을 꼭 잡고
목적지는 없지만 목적은 있는 너와 나
우리들의 boat journey 너와 나의 Boat Journey
삶의 결을 따라서 함께 하는 이 여행 더 멀리 더 깊이
너와 나의 Boat Journey 북두칠성을 따라서
함께 하는 이 여행 우리 한배를 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