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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Dec 10. 2020

곱씹는 여행의 맛

'잠시 멈춤'에서 찾는 의미

 난 요즘 지나간 여행의 추억을 곱씹는 재미로 살고 있다. 길을 걷거나 운전을 할 때 심지어 마트의 장을 보다가도 문득 과거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회상하게 되어 나도 모르게 그 시기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몸은 이 곳에 있지만 순간 눈앞이 뿌예지며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 그 안에서 헤엄을 치다 다시 마트에서 장을 보고있는 나로 돌아오면 지금 내가 발 딛고 서있는 이곳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몽롱한 기분이 된다. 그런 느낌을 좋아한다. 일종의 환각상태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강렬할 때가 있는데 어린 시절 느꼈던 낯선 체험의 기분과도 닮아 있다.

 



베를린 중앙역 인근


 초등학생 시절 아직 자아형성이 되지 않았던 탓일까? 이와 비슷한 기분을 종종 느꼈다. 순서는 대략 이렇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다가 땀에 흠뻑젖은 채 나무 그늘 아래 쓰러지듯 누워 운동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카메라로 초점을 맞추듯 내 팔에 흐르는 땀, 맥박 같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었다가 다시 멀리 떠들며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멀리 지나가는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을 바라보다가 다시 가까이에 지저분해진 내 운동화를 응시한다. 그렇게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반복해 변화시키다 보면 어느새 '여긴 어디지? 이들은 내 친구인가? 지금 이 몸은 나 자신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몇 초간 내 눈에 비춰진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곤 했다. 그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할 땐 내게 말을 거는 친구들의 목소리도 수돗가를 향해 걸어가는 내 두 다리의 감각이나 목덜미를 강하게 때리는 햇살도 낯설면서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 뒤로 묘한 그 기분이 재밌어서 습관적으로 틈이 날 때마다 그 상태에 빠지기 위해 노력 했다. 그리고 적어도 고등학생 때까지는 그런 시도가 쉽게 먹혀들었다.




암스테르담 반고흐 미술관 앞 광장



  하지만 성인이 되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직업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걱정이 생기면서부터 조금씩 그런 상태에 빠지는 일이 어렵게 됐다. 아니,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지치고 힘들 때마다 난 그런 감각에 빠지기를 갈망했고 이젠 그게 내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약간의 씁쓸함을 느꼈다.


 어쨌거나 그런 기분으로 지내다가 최근 그와 비슷한 감각을 다시 일깨울 수 있는 방법이 여행을 회상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여기서 말하는 여행의 회상은 실제로 내가 물리적으로 그곳에 가서 겪었던 그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떠한 시기에 마음 깊이 흡수한 독서의 순간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 지나온 감각을 회상하고 곱씹는 일이 지금의 나를 현재의 나로부터  분리시켜 어린시절의 감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법이라는 걸 알았다.


베를린의 저녁



 난 기록에 집착한다. 여행을 다닐 때 병적으로 사진에 집착한다. 그리고 독서를 할 땐 밑줄에 집착한다. 일일이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닐 수 없고 아이폰으로 보면 눈이 아파서 이북리더기를 샀지만 밑줄 치는 기능이 불편해서 결국 다시 아이폰으로 책을 읽으며 밑줄을 친다. 그것은 지금 이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욕망과 어떻게든 내 삶에 인상적인 것들은 최대한 기억에 담아보겠다는 욕심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드는 의문은 그렇게 저장되는 산처럼 쌓인 기록들을 나는 나중에 어떤식으로 감당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너무 앞만 보며 새로운 기록에만 집착하다보면 기록의 더미 속에서 파묻힌 진주를 찾지 못하게 되거나 그 존재조차 망각하게 된다. 최근에도 사진과 메모, 독서 노트를 보다가 쌓여가는 기록의 양이 결코 내 의식의 양과 비례하지 않는 다는 점이 허무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편하고 거대한 저장매체를 칼자루처럼 휘두르며 순간순간들을 그저 ‘대충’ 그리고 ‘많이’ 씹지않고 삼켜버린듯 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내가 다시 뒤로 돌아가 천천히 기록들을 곱씹을 필요성을 느끼게 된 이유다.


 오랜만에 외장하드에 쌓여있는 파일을 열어본다. 이제는 타인처럼 느껴지는 과거의 나를 마주할 수 있고 전에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일들의 많은 부분을 긍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낯선 기분이 오늘의 날 더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유쾌하진 않지만 이렇게 된 이상 바야흐로 여행을 회상하고 곱씹기 좋은 시기이다. '가끔은 뒤도 한 번 돌아보라'는 신의 선물이라고 말하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얻어맞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소중한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 우리만의 답을 찾아서 어떻게든 잘 버텨내야겠다. 


 사실 오늘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은 건, 나름 연재로 진행하다가 멈춰진 '베를린에서의 기록'때문이었다. 2년 전의 내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 했던 것인데... 서론으로 '코로나와 여행을 회상하는 일'에 대해 적다 보니 결국 주절주절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뭐 이것도 이거대로 전부터 다루고 싶었던 내용이다 보니... 민망하지만 맨 위에 제목 탭으로 돌아가 '22. 파리에 사는 친구(베를린 이야기)''곱씹는 여행의 맛'으로 바꾸어 업로드해본다.




(아래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인 뫼르소가 감옥에 있던 중 느낀 감정이다.

오랫동안 마음에 깊게 남아있어서 아래에 적어본다.)



"과거를 추억하는 것을 배운 뒤로는 심심해서 괴로운 일은 없었다. 몇 주일이 지난 후에는 내 방 안에 있는 것들을 나란히 머릿속에서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여러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가 소홀히 했던 것, 잊어버렸던 것들을 기억 저편에서 끌어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바깥세상에서 단 하루만을 산 사람도 감옥에서 백 년 정도는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사람이라도 심심하지 않을 정도의 추억거리가 많을 것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그건 근사한 일이기도 했다. "





런던 리치몬드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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