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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Dec 14. 2020

22. 5년 만에 파리에서 만난 친구 K

5년 만에 파리에서 만난 친구 K와의 저녁식사


 오르세 미술관 구석구석을 폐장시간까지 구경하고 나니 배가 몹시 고팠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위해 미술관을 나왔다. 저녁 자리에는 K의 여자친구인 L도 함께 할 예정이었다. 늘 어리바리하고 썰렁한 개그를 던지는 이 친구와 몇 년을 함께 지내는 여자친구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친구와 들른 빵가게 (지금은 없어졌다.)


 달이 동그랗게 뜬 저녁, 길거리에는 분주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눈에 들어왔다. 내 낯선 마음과 달리 그 모습이 몹시 들뜨고 경쾌하게 느껴졌다. 하나 둘 간판에 불이 들어오고 길거리엔 맛있는 요리 냄새와 분주한 여러 소리들이 내 감각을 자극했다. 배가 고팠던 우리는 L을 기다리는 동안 조그마한 가게에서 미니 햄버거를 먹었다. 친구는 내게 뭘 먹겠냐고 물어봤다. 난 '너와 같은 거'라고 말했고 친구는 조그마한 버거 두 개를 들고 와 하나를 내게 건넸다. 친구가 프랑스어로 주문하는 모습을 처음 봤는데 약간은 어눌한 그 말투에 의구심을 가졌지만 친구는 한국말도 그런 식으로 하는 친구였다.


"너 프랑스어 많이 늘었어?"

"아니. 말을 자주 하질 않아서 기본적인 거만 해"


 그 말이 사실인지 겸손을 떠는 건지 나로선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런 간단한 말을 주고받는 모습조차도 어린아이 같은 내 눈엔 그저 멋져 보였다. 난 배가 고파 급히 햄버거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순간 강력하게 풍기는 염소치즈 냄새에 깜짝 놀랐다. "악 이 냄새 뭐야!?" 친구는 음식으로 가득 찬 입을 오물거리며 "냄새? 아~ 염소치즈?"라고 말했다. 나는 더 먹지 못하고 나머지를 그냥 친구에게 줘버렸다. 먹음직스럽게 그 음식을 먹고 있는 친구를 보며 속으로 '너 정말 현지인 다됐구나. 멋져'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가게를 나와 걷다가 퇴근 후의 L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는데 자신감 넘치는 눈빛과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둘은 자주 가는 술집이 있다며 그곳으로 날 안내했다. 걸어가는 길에도 아담한 상점들이 즐비해 천천히 구경하며 걷느라 내 걸음은 느릿느릿했다. 고맙게도 둘은 내게 맞추어 천천히 걸어주었다.


 출입문도 테이블도 나무로 된 따뜻한 분위기의 가게가 나왔다. 영업을 막 시작했는지 분주한 모습이었고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몇 가지의 메뉴가 나왔다. 특히 말린 고기들과 치즈, 피클이 한 접시에 담긴 요리가 눈에 들어왔는데 난 본능적으로 "이거 설마 염소치즈는 아니겠지?"하고 물었다. 걱정과 달리 전부 맛이 아주 좋았고 함께 곁들인 와인도 훌륭했다.


 K에게 5년간의 근황을  물었다. 지금은 디저트 가게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잘 지내고 있지만 그전까지의 과정이 궁금했다. 파리로 떠나기 전 서울에서 만난 뒤로는 나도 내 앞길만 보며 살았기에 우린 약 5년 정도 전혀 근황을 주고받지 못했다. 싱글벙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K는 지나온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예상보다 훨씬 충격적이고 어떤 부분에선 굴욕적이기까지 해서 싱글벙글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저 미소가 실로 경이롭게 느껴졌다.


 K는 '인생은 실전이다'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는 스타일이다. 한국에서도 그 어떤 고난 앞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인내하며 힘든 제과제빵업계에서 수년간을 버텨낸 그다. 하지만 인생이 실전이긴 해도 인터넷 검색의 도움을 받으면 그 난이도가 제법 많이 낮아진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그는 처음 한국에서 파리로 올 땐 공항이 시내에 인접해있는 줄 알고 교통편도 알아보지 않고 그냥 공항에 내렸다. 시내로 진입을 해야 하는데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아 거의 울기 직전, 기적적으로 한 한국인 유학생의 도움을 받아 유학원을 찾아갔다. 이뿐만이 아니다. 파리에선 세제나 이불 같은 것들이 비쌀 것 같아서 6개월치 정도 사용할 세탁세제와 두꺼운 이불 그리고 통기타까지(그는 의외로 낭만파다.) 챙겨서 비행기 탑승수속을 했다고 한다. 해외를 처음 나가보는 그는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수화물의 무게가 있다는 것을 몰랐고 때문에 몇 배의 초과 수화물 비용을 지불해 파리에 도착했다. 이런 편리의 시대에 아직도 이런 막무가내식의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 날 아연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돌아서 가는 삶 속에서 또 배움이 있다면 있겠지...'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난 배꼽을 잡고 웃다가 다시 심각 해졌다가를 반복했다.


 물론 모든 것이 K 자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외부 상황도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한국의 유학원을 통해 방을 구했는데 사전에 나눈 이야기와 달리 무척 위험한 우범지역의 난방도 안 되는 10층 숙소에 살게 된 일, 한 밤중 소매치기를 만나 지갑도 핸드폰도 전부 잃어버려 길바닥에 누워버린 일, 새벽 아르바이트 출근길에 괴한을 만나 유리병으로 머리를 가격 당했던 일 (그는 머리에 흐르는 피를 적당히 닦아내고 출근을 했다.),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출근날이 아닌데도 한인마트에 출근해서 직원식당의 밥을 얻어먹고 미안해서 서빙, 청소를 도왔던 일... 등 도저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수많은 고난들이 그에게 불어닥쳤다. 싱글벙글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는듯한 그의 쿨한 태도에 나는 일종의 존경심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한인마트에서 K는 바로 운명의 여자 친구 L을 만났다. 그녀는 파리의 패션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K와는 정반대로 하루하루를 철저한 계획 속에 살고 있으며 단 한 번도 자기가 계획하지 않은 대로 일이 처리된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나로선 솔직히 그 말을 완전 믿을 수가 없었지만...) 매사에 기민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이었다. 이런 K와 L이라니... 난 둘을 보며 K가 믿고 있는 신이 어쩌면 이 친구에게만은 정말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그는 조금씩 그녀와 함께 파리 생활에 적응을 해나가고 있었다.


 당시 둘은 새로 이사할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K는 저렴하지만 조금 춥고 불편한 집을, L은 약간 투자를 하더라도 쾌적한 환경의 집에서 살고 싶다고 의견을 다투는 중이었다. 나는 전적으로 L의 의견을 따르는 게 좋겠다고 말했고 아마 그렇게 결정된 듯 보였다. 난 이제 K가 인갑답게 안락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은 디저트 가게를 차릴 계획도 갖고 있다고 했다. L은 인테리어부터 브랜딩 작업까지 벌써 큰 가닥을 잡았다며 몇 가지 시안과 샘플사진들을 내게 보여줬다. 그녀는 내 예상보다 훨씬 디테일한 내용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둘 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중인데도 이렇게 미리 사업에 대한 구상까지 잡아놓았다니... 앞선 K와는 정반대의 느낌으로 L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왠지 신비롭게 느껴졌던 불빛의 지하철역

 장소를 옮겨가며 여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버렸고 지하철이 끊길 시간이 되었다. 우린 같은 역으로 내려갔지만 돌아가는 방향은 반대였다. 건너편으로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타국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그렇게 둘은 떠났고 나는 잠시 멍해졌다가 또다시 습관처럼 던지던 질문을 내게 던졌다.


여긴어디지

난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당시의 날짜는 2018년 2월 말. 글을 쓰고 있는 현재 2020년, 둘은 부부가 되어 파리에 Binici라는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구글맵에 검색을 해보니 벌써 180개에 가까운 리뷰로 파리 시민의 사랑받는 가게가 되었다. 오랜만에 그 날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최근 소식을 접하니 새삼 다행스럽고 또 부부가 존경스럽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당장은 닿을 수 없는 지금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굳건히 오늘을 견뎌내고 그 날의 저녁식사처럼 웃으며 지나온 일들을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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