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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Jan 05. 2021

27. 살아있길 잘했다는 감정

에트르타, 대자연이 알려주는 것

 우리는 에트르타로 향했다. 원래의 계획은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몽셸미셸에 갈 예정이었지만 예상보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던 탓에 일정을 변경했다. "계획은 바꾸라고 있는 거지~" L누나는 우리가 좋아하는 그 말을 하면서 차의 방향을 틀었다. 아침부터 내내 흐렸던 날씨가 늦은 오후가 되자 차츰 개이는 듯했다. 먼 북서쪽 하늘에 아름다운 구름과 햇빛이 보였다. 그 방향이 우리가 가고 있던 해안마을 에트르타의 방향이길 속으로 빌었다.



 마을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해안가로 갔다. 구름이 살짝 낀 하늘과 바다, 그리고 조용한 파도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바닥엔 모래가 아닌 돌멩이들이 깔려있었다. 투명하고 동그란 자갈들이 마치 잘 깎인 보석 같았다. 더 높은 곳에서 에트르타를 조망하기 위해 우린 성당 근처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거대한 절벽 아래로 광활한 바다가 한눈에 펼쳐졌다. 그렇게 높은 곳에서 바다의 전경을 내려다본 건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먼 곳의 절벽에는 과거 쿠르베와 모네가 그림으로 즐겨 그렸다던 코끼리 모양의 절벽이 있었다. 나도 사진기가 보급되지 않던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이 아름답고 강렬한 풍경을 어떤 식으로든 남기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연신 아이폰으로 사진을 담았다. 그리고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넓은 하늘과 바다가 내 근심과 걱정 따위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다 받아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난 무의식 중에 누나에게 "살아있기를 잘한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한동안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염려나 걱정들이 매우 작은 티끌처럼 느껴졌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의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광대한 풍경에 우리를 비추면 허약하고 수명도 짧은 우리의 몸은 나방과도 같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매우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활자로만 읽고 통과시켰던 그 진리를 실재적인 오감으로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우린 적당한 간격을 가진채 한 동안 말없이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옆에 누나 또한 그 풍경에 깊이 심취한 듯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묻진 않았지만 '대자연 앞에서만 꺼낼 수 있는 어떤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반추하고 있는 게 아녔을까'하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여리고 위태로운 아이일뿐인 것이다.


흐린 하늘, 태양이 구름 사이로 몇 번이나 등장했다가 숨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 순간 먼바다 하늘 아래로 동그란 원을 그리는 햇빛의 풍경이 펼쳐졌다. 믿을 수 없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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