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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Jan 11. 2021

28. 프랑스 여행의 마무리

노르망디의 하늘과 봄꽃나무의 위로


몽생미셸(Mont Saint-Michel)
몽생미셸(Mont Saint-Michel)



 다음 날엔 몽생미셸(Mont Saint-Michel)에 갔다. 그 섬 위에는 환상적인 모습의 기묘한 성 하나가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다. 노르망디의 주교였던 오베르가 천사 미카엘의 계시를 받고 지은 예배 건축물이라고 한다.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성 가까이에 다가갈수록 그 웅장한 전경에 압도되었다.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듯했다. 확실히 어제 해질녘에 왔었더라면 더 아름다웠겠다고 생각했지만 전날 에트르타에서 맛보았던 황홀함을 생각하면 그런 아쉬움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이곳저곳을 살피며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신앙심의 깊이라던지 삶의 목적 같은 것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었다. 강한 믿음과 사명이 있지 않고서는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수많은 사람들이 수백 년에 걸쳐지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자기 의지와 다르게 동원된 낮은 신분의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겠지... (이런 부정적인 측면으로 계속 생각이 쏠리는 것을 당시엔 막을 도리가 없었다.)


 성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한 가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아빠, 아들 세 사람 모두가 카메라를 한 대씩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처음엔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사진을 찍는 이들이 가족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다가 맨 꼭대기 층에서 가족이 모두 만나 서로 사진을 보여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그 사실을 알았다. 미소 짓고 있는 부모와 달리 눈썹에 잔뜩 힘을 주고 진지하게 자기 사진을 설명하는 꼬마 아이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나도 저런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건물 꼭대기 층에는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내리쬐는 햇살은 따뜻했다. 천천히 수도원을 걸어 내려오는데 계단 근처에 조금씩 피어나는 살구꽃을 발견했다. 가문 내 마음처럼 세상도 내내 겨울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새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따뜻한 계절이 온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다. 피기 전 꽃나무 하나에 이런 깊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니 스스로 놀라웠다. 그 순간의 강렬한 기억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가 나중에 베를린으로 돌아와 그림으로 옮겼다.


몽생미셸(Mont Saint-Michel)에서 만난 살구꽃 나무 (2018)


 우리는 생말로(Saint-Malo)를 끝으로 노르망디 지역의 여행을 마쳤다. 생말로 또한 무척 아름다운 마을이었는데 글로 적다 보니 개인적 감상에 젖어 너무 지루한 글을 늘어놓는 것 같아서 이만 줄인다. (이미 실컷 떠든 것 같지만... 생애 첫 프랑스 여행의 매 순간이 나로선 정말 강렬했어서, 전부 글로 옮기고 싶지만 그럴 시간도 실력도 없어서 아쉽게 줄인다.)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니 렌터카 반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우린 차를 급히 파리 방향으로 돌렸다. 조금씩 태양도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전 날과 마찬가지로 날씨는 흐렸다가 맑았다가를 반복했다. 우린 렌터카 반납을 위해 차의 속도를 내어 달렸다. 한참 가고 있는데 길 앞에 커다란 무지개가 보였다. 나는 큰 목소리로 L 누나를 부르며 소리쳤다! "와! 누나 무지개에요!", "와 정말! 너무 이쁘다!"누나도 소리쳤다. 한껏 격양된 우리는 듣고 있던 노래의 볼륨을 더 키웠다. 자세히 보니 그 뒤에 흐린 무지개가 하나 더 있었다. 난 그 날 처음으로 쌍무지개를 봤다. 가랑비가 내리는 앞 차창으로는 와이퍼가 왔다 갔다 했고, 떨어지는 햇빛으로 인해 반짝이는 밭은 따뜻한 황금색이었다. 거기에 쌍무지개까지 더해져 내겐 눈 앞의 다채로운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지금도 그 순간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눈 앞을 왔다 갔다 했던 와이퍼가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움직인 것처럼 기억된다. 시간이란 순간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다른 속도로 흐르는 모양이다.


쌍무지개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이미 렌터카 반납 예정시간은 지난 상태였다. 자동차는 아득한 어둠 속을 계속 달리고 있었다. 난 칠흑 같은 어둠이 신기해 창문을 내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바닥으로 쏟아질 듯 무수한 별들이 밤하늘에 펼쳐져있었다. 난 또 누나에게 창밖을 보라고 말했다. 누나도 창밖의 별들을 슬쩍 보더니 환호를 했다. 우린 결국 소중한 우리의 생명을 위해 갓길의 쉼터에 차를 세우고 별을 구경했다. 난 내심 반납 시간이 걱정됐지만 그녀는 "에이 어차피 늦어진 거... 상관없어!"하고 말했다. 과연 내가 존경하는 사람다운 태도였다. 난 똑딱이 카메라를 자동차 위에 올려놓고 하늘을 바라보게 한 뒤 타이머 촬영으로 별을 담았다. 실컷 별구경과 촬영을 마치고 다시 자동차에 올라타며 나는 말했다. "누나, 오늘 진짜 자연한테 다 받은 거 같아요"

 봄을 알리는 꽃, 따뜻한 무지개 풍경, 밤하늘의 별까지 정말 오늘 하루 자연에게 받을 수 있는 모든 선물을 다 받은 기분이 들어서 한 말이었다.


노르망디의 한 고속도로에서 올려다본 밤하늘


 이제 시간은 지날대로 지나버렸다. 마음을 내려놓아서인지 전보다 조급한 마음이 사라졌다. 이제 거의 파리 시내에 다 와가는 듯했다. 창밖 먼 산을 보았는데 산과 산 사이에 주황색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산불이 났나 봐요." 내가 말했다. 누나도 가만히 보더니 "어머 정말..."하고 말했다. 몇 분뒤, 그 빛이 거대한 보름달이었다는 사실을 우린 알게 됐다. 달력을 보니 그 날은 3월 3일. 정월대보름 다음날이었다. 우린 또 한 번 소리를 쳤다.

 "와 세상에... 달이 남아있었구나..." 난 조금 아연의 기색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사진으로 담을 수 없었던 커다란 보름달


 이 날의 상황을 글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다시 그때의 두근거림이 잔상처럼 떠오른다. 난 자연과 계절이 주는 선물이 이렇게 나에게 절절하게 다가올 수 있음에 놀랐다. 그동안 자연과 예술은 적당한 거리에서 늘 친근하게 날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건물 속에 파묻혀 눈과 귀를 닫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L누나는 내게 그런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며 파리여행을 마무리 했다.


 L누나와는 아침에 집을 떠나며 작별인사를 했고, 친구 K는 공항열차 탑승장까지 배웅을 해줬다. 헤어지기 전 우리는 가벼운 포옹을 했다. 자랑스럽고 고마운 내 사람들... '다시 만날 땐 나도 이들처럼 강한 사람이 되어있기를' 속으로 깊이 다짐하며 다시 베를린으로 향했다.




몽생미셸에서 만난 포토그래퍼 가족 (엄마와 아들)
생말로(Saint-Ma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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