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배티공원
조안이는 울산에서, 임률이는 대구에서 건너왔다. 톰과 제리의 애증관계는 이번 한가위에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아웅다웅 잘 어울린다. 만나자마자 치과 놀이. 환자였던 톰이 돌연 제리의 주치의가 된다. 아버지께서 묵혀두신 달달한 와인 또한 엄마 손맛 깃든 명절 음식들과 잘 어울린다.
달 밝은 밤, 배티공원으로 향한다. 배와 복숭아, 포도까지 투입돼 잔뜩 부푼 배를 꺼트리고자. 임률이는 씽씽카도 끌고 나왔다. 바람을 가르며 날렵하게 잘 탄다. 타보라며 누나에게 양보하는데, 조안은 손사래 치며 거절한다. "난 파란색 싫어해." 피식, 핑계 한번 시크하네. 겁나서 질색하는 거면서. 네가 지금 입고 있는 파란 치마바지는 뭐냐.
미끄럼틀 신나게 타는데, 이모네 식구들이 당도한다. 서울 사는 은찬이와 진해 사는 다임이. 다들 부쩍 컸다. 김 원장과 형수님들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워낙 꽃인 아이들은 콩벌레에 꽂혔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찬찬히 관찰한다. 날씬한 고양이에게도 살금살금 다가간다. 꺼리는 기색이 없어 바짝 붙었는데, 날카로운 송곳니 드러내며 캭! 친밀 거리(Intimate Distance)에서 개인 거리(Personal Distance)로 일보 후퇴.
딸내미는 그네에도 꽂혔다. 몇 번 밀어줬더니, "아빠, 이젠 밀으지 마." 휙휙 하늘을 가른다. 손으로 속도까지 조절한다. 현 정부 접어들어 극히 꺼렸었는데. 그 단어만 봐도 아미그달라에서 적신호가 깜빡였는데. 환희로운 아이 표정에 그간의 조건반사 시스템이 개벽된다. 이제 그네 하면 그린라이트.
아이에게 아빠는 산이다. 듬직한 태산이면 좋으련만, 만만한 놀이동산. 내 손목을 꽉 잡고 오더를 날린다. "아빠, 돌아~" 춤추듯 몇 차례 스텝 밟더니 스테이지에서 두 발을 뗀다. 허걱!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난 아직 아빠), 롯데월드 회전그네로 써먹는구먼.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좋은 예인가.
꽃이 피고 새가 날고 움직이고 바빠지고,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 다시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달밤에 체조하는 이들로 북적이는 공원 정경이 촤르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귀에 검은 봉지 걸고 구토하며 ER에 실려오는 whirling type vertigo 환자분들의 고충이 이런 질감이었구나. 딸 덕분에 동병상련의 인술까지 베풀 게 생겼네. 더 잘해드려야겠다. 우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