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과 전문의에게 추석이란
"과장님, 저 어제 기도하고 잤습니다." 윤 선생의 아침 인사다. 그랬냐. 잘했다. 나도 출근 전에 기도했어. 오늘 풍경이 궁금해서 일진 타로도 확인했네. 전차 카드. 흑백의 쌍두 스핑크스 전차를 타고 전장으로 향하는 장군이다. 그렇다. 인턴 선생 둘 데리고 명절 ER을 사수해야 한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 DJ 호란이 들려준 마지막 곡은 윤종신과 정인의 <오르막길>이었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한 걸음 이제 한 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 마~' 뭐냐. 복선치곤 너무 노골적이잖아.
첫 번째 한 걸음. 키우던 개에게 물린 환자다. 코의 살점이 흉하게 뜯겨나갔다. 드레싱 후 미용성형센터에 방문하시도록 안내. 자나 깨나 견조심, 순한 개도 다시 보자. 오른쪽 옆구리 붙잡고 끙끙대던 소녀는 요로결석, 왼쪽 옆구리 아파하셨던 할머니는 신우신염이다. 소녀는 약 주고 퇴원, 할머니는 약 쓰며 입원.
아무리 깨워도 소용이 없다며 자제분들이 힘겹게 모셔온 할머니. 내 자극에 미간 찌푸리며 역정 부리신다. 수면제 반감기가 지날 때까지 코 골며 푹 주무시다 초롱-말똥한 눈망울로 귀가. 말 어눌하고 몸 휘청거리는 아버님. 뇌경색 의심 하에 검사에 돌입했다. 뇌교로 향하는 혈관이 한가위 하이웨이처럼 막혀있다. 빨리 발견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훔, 아직까진 여느 때와 풍경이 비슷하군.
한 스무 걸음 즈음. 어르신이 식은땀 흘리며 ER에 들어오신다. 식사하시다 숨쉬기 힘들어하셨다고 부축하던 아들이 알려준다. 기관 삽관 고려하며 우선 가래 suction. 석션 카테터 끝자락에 미확인비행물체가 네모 반듯하게 매달려 있다. 창백했던 혈색이 차분해진다. 휴, 추석이 제삿날 되실 뻔했네. 훅 가게 만든 한 방은 탕국 속 무였다. 자나 깨나 무조심, 씹은 무도 다시 보자.
한 청년이 왼손 엄지를 휴지로 감싸고 왔다. 엄지 아래 손바닥에 2cm 열상. 차례상에 올릴 과일들 꼭지를 따다가 손까지 썰었다. 자나 깨나 칼조심! 한 어머니는 자동차 문에 찍혀 왼손 검지가 찢어지셨다. 선산에 당도하셨으나, 성묘도 못하시고 병원으로 달려오셨단다. 봉합하는 내게 넋두리. "에휴, 나 같은 등신도 있어요?" "많아요, 엄청." 위로가 되셨을라나.
묘소 살피고 하산하다 비탈길에서 넘어진 아주머니는 요추 1번에 압박 골절이 생겼다. 통증 조절하며 정형외과 입원. 자나 깨나 산조심! 제사와 음복, 그리고 성묘. 그 와중에 이런 사건사고가 엄습한다. 응급실에서 체감하는 소위 '명절 증후군'의 스펙트럼은 한결 넓고 깊고, 중허다. 위험천만한 빅 이벤트.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낸다, 우리 민족이.
연휴 ER 내원객의 중증도 스펙트럼도 천차만별이다. 취중에 밭에 휘발유 뿌리고 라이터 켜신 어르신은 전신에 2도 화상을 입었다. '9의 법칙(Rule of Nines)'으로 따져 보니, 화상 범위는 63%. 스흡~ 심호흡하고 도배에 가까운 드레싱을 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자나 깨나 불조심!
한편, 면봉 솜이 귀에 들어간 것 같다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귀 파던 면봉의 대가리가 벗겨졌는데, 행방이 묘연하다는 거다. 귀 안에서 바스락거리니 빼달라신다. 이경을 눈에 대고 짱박힌 솜털 찾아 삼만 리, 아니 삼 센티. 고막은 의구한데, 면솜은 간 데 없다. 귀지만 낙엽처럼 바스락. 이비인후과 포셉으로 낙엽 쓸었다. 귀청소방 서비스까지, 허허.
응급실에 들르신 분들은 평소의 3배 남짓. 예상대로다. 인턴 선생은 환자가 적게 오길 기도한 모양인데, 그건 부질없는 짓이다. 얼마나 오든, 기꺼이 감당할 수 있기를 난 빌었다. 어떠한 여건에서도 웃음기 사라지지 않길 염원했다.
자극에는 역치가 있고, 인내에는 한계가 있는 법. 환자의 중증도와 보호자의 막무가내도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내 인내의 한계는 대략 백 걸음 정도. 상대한 환자수가 100명을 넘어서면, 웃음기 쫙 빠지고 친절도가 급격히 떨어지곤 했다.
맷집은 늘기 마련. 예전 같으면 울컥했을 상황도 웃어넘겼다.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예측불허의 공간이라 민원은 필연이다. 컴플레인만 없어도 선방인데, 도리어 칭찬을 들었다. 자택에서 넘어져 두피 부종 생기신 할머니의 아드님께 검사 결과를 보여드렸더니, "시원시원하게 설명해주시니 참 좋네요. 안심이 돼요."
전화상담원의 '솔'톤보다 살짝 더 높게, '시'톤으로 얘기한 이펙트일까(사월의 미, 칠월의 솔. 구월엔 시). 아드님 옆에서 날 바라보던 며느님의 속삭임은 귀지를 뚫고 고막에 촥 꽂혔다. "심지어, 잘생기셨어." 심지어, what's worse. 이게 이 대목에서 적절한 부사이던가. 뜬금없는 외모 드립에 피식.
내가 고래 조련사들을 만났나. 기분을 춤추게 할 줄 아시네. 응급의료센터에서 원하는 서비스를 흡족하게 받고 싶다면, 웃는 낯으로 의료진들을 칭찬해보라. 기대 이상의 리액션을 보여줄 것이다. 그들도 감정에 좌우되는 인간이므로. 칭찬할 구석이 딱히 없다면, 외모라도. 반어법도 유효하다. 적어도 내 경험상.
한가위 연휴에 2차 병원 응급실에는 기승起承은 달라도 전결轉結이 똑같은 환자분들이 잔뜩 몰린다. 기력이 없으니 영양제. 어지러우니까 영양제. 배 아프므로 영양제. 명절 때마다 ER을 덥치는 영양제 쓰나미를 난 극히 꺼린다. 평소에 잘하지. 효도관광 코스로 ER을 스치나. 심지어, 투어가이드의 안내를 일절 따르지 않는다. 막무가내로 자유여행.
아무튼 '아득한 저 끝'에 끝내 닿았다. 한 걸음씩 뚜벅뚜벅. 오르막길의 다채로운 풍경들, 이젠 모조리 아련한 추억이다. 올라온 만큼 한결 더 노련해졌다. 남들 놀 때 못 쉬는 직업병, 응급의학과 의사의 명절증후군 치유엔 이런 되새김질도 주효하다. 아내가 몸담은 병원의 주사실에 누워, 비타민 영양제 빨아들이는 역지사지의 안식과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