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생산적 유유자적
"아빠, 저 젤리 먹고 싶다."
"놔둬. 개미들도 먹고 살아야지."
뇌과학자 김대식이 그랬다. 기계가 대부분 생산적인 일을 한다면, AI 시대의 인간은 비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그가 규정한 인간에 가깝게, 하루를 채우고 있다. 유유자적 무위도식. 유치원 등원을 돕고, 발레 익히고 왔다는 조안과 소꿉놀이를 한다. 그 와중에 문득 든 생각. 아이와 놀아주는 건 생산적인 일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서재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양장피 먹고 솟구친 잉여 에너지 소모하고자. 내가 아니면 끝낼 수 없는 생산적인 일이다. 말년 병장처럼 군기 빠진 책들을 흔들어 깨워 주제별, 저자별로 각잡고 있다. 느릿느릿 비생산적으로.
아, 이런 책도 있었지. 잊혀진 책들의 재발견. 뜻밖의 면회객 맞이하듯 반가움이 앞선다. 더불어 두려움이 뒤따른다. 이렇게 더딘데, 제대로 제대할 수 있을까. 약천 남구만 선생의 시조가 절로 터져 나온다. 책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서재 언제 갈려 하느니. 얼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