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 조르바와 이탁오

<그리스인 조르바>와 <분서>

by 하일우
부산 한 찻집의 속삭임. 매미 가고 가을 오네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한 구절과 함께 독서의 계절을 두근두근 끌어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그는 모든 사물과 생소하게 만난다. 그는 영원히 놀라고, 왜, 어째서 하고 캐묻는다. 만사가 그에게는 기적으로 온다.




<그리스인 조르바>와 손잡고 한 목소리로 절 뒤흔든 한 선각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탁오. 지식인이란 작자들이 껍데기뿐인 교조적 도학만 붙잡고 있던 명나라 말기, 국운 쇠하고 잔뜩 부패한 시대에 불티나게 읽힌 금서를 남긴 위인입니다. 그의 시대가 용납하지 못한 <분서>는 이탁오의 삶을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역사 이래 ‘혹세무민’, ‘풍기문란’이란 죄명은 죄다 시대를 앞서간 자들에 대한 거부반응이란 것을. 그리고 그런 자들을 잡아서 처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야말로 이미 낡은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는 징표라는 것을. 이탁오는 자연스러운 성정의 분출을 중시했습니다. 마음 가는 대로 살게 놔두라는 외침이었죠.


그는 두려움의 감정을 학문하는 자의 필수 자질로 여겼습니다. 두려움이 있어야만 쉬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감정은 우리 본성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그는 일갈합니다. 감추기는커녕 거리낌없이 표출하는 것이야말로 위선이라는 악을 제거한, 진실한 마음이라는 것이죠.



“무릇 동심이란 거짓을 끊어 버린 순진함으로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처음 갖게 되는 본심을 말한다. 동심을 잃게 되면 진심이 없어지게 되고, 진심이 없어지면 진실한 인간성도 잃어버리게 된다.” 어차피 마음은 하나라고 하면서 무엇 하러 그것을 둘로 쪼개어 그 반쪽을 죄악시하며 불안한 눈으로 바라본단 말입니까?

성리학의 복잡묘묘한 마음 이론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나온 탁오는 그 하나의 마음을 동심이라는 한마디로 아쌀하게 표현합니다. 진실한 마음! 정말 어이없게 쉽죠. 살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이젠 진지한 가르침으로서의 효력이 사라진 바로 그 진리입니다.


반역자가 휘두른 횃불에 계명산천 밝아옵니다.

사람은 진실해야 하는 법이니라. 이 말이 명대 말 지식인 사회를 발칵 뒤집은 탁오의 마음 이론, 동심설입니다. 동심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려질 뿐이랍니다. 동심을 가리는 것은 바로 많이 배워서 난 병, 견문과 도리입니다. 보고 들은 것이 많은 자일수록 자신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옛 문장가들의 글만 베끼고 흉내 내게 되잖아요.

탁오가 싸우려고 한 것은 바로 이것, 획일적이고 교조적인 학문, 도그마가 되어버린 지식입니다. 이를 ‘씻어내는 공력’이야말로 탁오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공부 덕목입니다. 배운 것이 하나의 잣대가 되어 내 마음을 가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죠. 아인슈타인도 토로했습니다. “내 학습을 방해한 유일한 방해꾼은 바로 내가 받은 교육이었다.”


너희는 낡은 삶을 버리고 새 삶을 도모하라. 묵은 습성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그 몸이 따라서 망하느니라. (道典 2:41:2~3)


계동길 다몽茶夢에서 보이차 담소. 심신의 탁기 씻어냅니다.

탁오는 54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공부에 전념합니다. 가족을 떠나보내고선 친구들이 마련해준 암자나 절에서 지내다 61세에 머리 깎고 출가합니다. 머리만 깎고 수염은 남겨두었으며, 계속 저술하면서 학문 동지들과 교류하였다죠.

탁오가 용담의 지불원에 머물 당시에 남긴 글에선 엄격한 주지스님의 매서움이 느껴집니다. 사람은 어차피 죽는 법이니 굶어죽는 것 두려워 말고 문 닫아걸고 공부하라고 승려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지요. 이것이 도를 깨치지 못하고 죽는 것이 가장 두려웠던 탁오의 공부법이었습니다. 이런 절박함 앞에선 어떤 경계도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리하여 탁오는 74세에 이르러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호라! 나는 오늘에서야 우리 공자를 이해했고 더 이상 예전처럼 따라 짖지는 않게 되었다.” 견식으로 앎은 풍부해지고 깊어질 터이나, 의식은 움직이고 마음은 언제나 열려 있을 것!


순서대로 즐겼습니다. 풍미의 밀도와 강도, 점입가경.

기존 도학이 자기의 불안한 욕망을 제어하기 위해 부지런히 외부의 것을 끌어오는 것에 전심을 기울였다면, 탁오는 자신의 완전함을 지키기 위해 외부의 것을 끊임없이 걷어냅니다. 마음에 대한 오롯한 긍정이죠.


자연치유에 조예 깊은 신 선생님 내외. ‘의료계 이탁오’랄까요.

모든 사람의 욕망은 이토록 그러할 만한 것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분별심을 제거해서 정말로 원하는 것을 찾아내려는 마음의 작동, 바로 동심의 과정뿐입니다. 그러니 동심의 상태는 한 점의 풍파도 없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가 아닌 겁니다. 툭하면 화내고 울고 기뻐 날뛰고는 또 금세 잊어버리는, 정말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심으로 세파 뚫고 나아갑니다.

이렇듯 동심은 마음의 작동방식이자 상태입니다. 씻어내고 열려 있고 진실한. 그 모든 욕구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게 하는 게 성인의 미션이며, 사람들 욕망을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 성인의 조건이라고 본 16세기의 탁월한 탁오가 아둔한 21세기 아재를 다그칩니다. “타고난 성정을 마음껏 내뿜으며 살아라. 그치지 않고 끝까지 기필코 가라.”



sticker stic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