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의 <비평기계>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문 앞에 무심히 던져진 택배 상자를 집어듭니다. ‘반디앤루니스에서 뭐가 왔지?’ 의아한 표정으로 개봉해보니, 고미숙 선생님의 <비평기계>. 영화평론가 백정우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인데, 절판된 줄 알았거든요. 아내가 용케 찾아냈네요. 이로써 고미숙 컬렉션 모자이크 퍼즐 완성.
소유에서 자유로,
증식에서 순환으로.
디지털 문명은 백수의 시대다.
백수는 인류의 미래이자
인류의 본능이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은 자유인이다.
서재 책상에 다소곳이 앉아 ‘백수계 고수’의 서문부터 훑어봅니다.
여기 실린 글들은 95년 이후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짬짬이,얼떨결에 쓴 잡문(!)들이다. 잡문이라는 것이 일상의 틈새를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까닭에 순간을 짜릿하게 즐기는 맛은 있으되, 신체 깊숙이 새기고 긴 시간 되뇌여 우려내는 저력은 절대 부족하다. 더구나 내부에서 솟구치는 테마들과 겨룬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지는 과제들에 즉흥적으로 응답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늘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하는 ‘속도전’을 피해 가기 어려웠다.
책을 내는 지금은 1999년 12월이다. 세기말의 운무와 세기초의 여명이 교차하는 이 기념비적 시간은 나로서는 사실 그 같은 거창한 의미보다 이제 본격적으로 40대로 접어든다는 점에서 더 자극적(!)이다. 40대를 불혹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아직 생의 저 도저한 심연과 폭풍의 위력을 느껴 보지도 못했는데, 웬 불혹? 이제부터 그 한가운데를 탐사하기 위한 ‘즐거운 전투’를 수행해야 할 터, 다음에 내는 비평집에는 진정, 생에의 강렬한 ‘유혹’이 흘러 넘치기를!
이런 거 무심히 던져주는 가장 덕분에 밋밋할 뻔한 주말이 돌연 풍요롭네요. 고 선생께서 불혹에 접어들며 쓰신 잡문을 불혹에 접어들어 탐독합니다.
즐거운 전투, 기꺼이 수행!

생각에서 생각이 나오느니라.
무엇을 하나 배워도 끝이 나도록 배워라.
道典 8: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