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와 모츠나베
일하는 틈틈이 김영민 교수님 칼럼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야금야금 삼킵니다. 영롱하고 묵직한 통찰이 발랄한 문장에 실려 혈자리 곳곳에 콱콱 박히네요. 일상의 어혈이 시나브로 풀립니다.
환자와 환부에 맞춰 법제法製한 여러 보약 중에 한 첩, ‘신입생을 위한 무협지’의 대미는 이러합니다.
대학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퇴학을 꿈꾸는 경우도 있는데, 학위 과정이라는 천라지망天羅地網에 갇힌 이상 섣불리 퇴학하지 말고, 운기조식運氣調息의 기회를 갖는 것이 좋다. 이 아수라에서는 어차피 어떤 성취의 희열도 짧기 마련이니, 지나친 허무감을 경계하라. 허무는 대개 금강불괴金剛不壞가 되지 못한 허약한 체력에서 유래하나니, 왜 사는지 잘 모르겠거든 <슬램덩크>의 정대만처럼 애절한 목소리로 교수에게 말하라. 선생님, 고기가 먹고 싶어요.
천라지망살에 걸려들어 갱무꼼짝하는 시즌엔 운기조식이 유일무이 솔루션입니다. 운기조식 감빵생활의 슬기로운 사식으론 고기가 합당합니다. 그래서 종종 고기에(‘ㅗ’와 ‘ㅓ’의 중간 발음) 갑니다. 큐슈 후쿠오카. 윤동주 시인 등을 생체실험했던 형무소 자리에 니시공원을 차려둔 도시죠(윤봉길 의사의 오사카 형무소 자리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신사를 세운 것과 같은 수작입니다).
사연 많은 그 도시가 울산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건 제 위장에 떨어진 작은 행운입니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아침에 일터를 빠져나와 김해공항 라운지에서 라면 하나 빨아들인 뒤 비행기에 올라타면, 후쿠오카 텐진에서 말고기 육회를 브런치로 핥을 수 있습니다.
위장을 선점한 말(うま)들은 모츠나베 온센(温泉)에서 허우적대다가 하이볼과 나마비루로 샤워한 뒤 유유히 소장으로 떠나갑니다.
텐진 <쇼라쿠笑樂>의 모츠나베는 우동 사리가 대미를 장식하네요. 하카타 버전처럼 두부까지 섭외한다면 풍미가 한결 증폭될 듯합니다.
짭짤해진 혀를 위한 슬기로운 후식으론 우에시마上島 흑당커피가 합당합니다. 텐진 신텐초의 다방에서 음양의 조화를 단짠단짠 도모하니, (김영민 교수님 표현을 빌려 가로되) 내장이 환해집니다. 모츠나베와 흑당커피 콤보는 (빌린 김에 김 교수님께 또 빌리자면) ‘학제 간 융합 연구의 결정체’라 하겠습니다.
텐진 지하상가를 늠름하게 누비고 옹기종기 밀집한 백화점들과 로프트까지 탈탈 털고 나면, 속이 털린 듯 헛헛해집니다. 그럴 땐, <키와미야極味や 함바그> 앞 장사진에 합류해야 합니다. 메뉴를 고르고 장 비우러 잠시 해우소에 다녀오니 뱀꼬리가 제법 짧아지네요. 식객들과 옹기종기 밀착하여 야금야금 스테이크 영접합니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남이 해줄 때만 맛있다지만, 앞발에 불과했던 손으로 지글지글 직접 익혀 먹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허무虛無를 허무는 고기들 위로 키와미야의 바닐라 아이스크림 후식까지 투하되면, 왜 사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멘탈이 돌아옵니다. 그쯤 되면 관운장이 수호하는 후쿠오카 공항으로 돌아가기 딱 좋은 타이밍입니다. 정대만처럼 포기를 모르는 남자까진 아니어도, 고기는 좀 아는 남자가 되어 희열 짧은 아수라로 컴백할 수 있습니다.
적당한 아쉬움은 다음 당일치기 운기조식의 밑천이 됩니다. 에너지와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어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레이디 버드의 전통을 오늘에 되살려 틈틈이 비행을 일삼는 금강불괴 가장이 이끄는 대로, 총총총 캐리어 끌고 쫓아가면 됩니다.
어즈버, 독후감 같은 식후감의 대미는 이러합니다. “도무지 허무한 아침에는 고기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단, 통풍 환우들은 예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