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보건교사 안은영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일 먼저 이를 닦아도 모자랄 판에 딸내미는 아직 꿈나라. 새벽 2시경에 코피가 퐝 터지더니 잠을 설친 모양입니다. 1교시가 시작될 즈음, 담임 선생님에게서 역시나 연락이 오네요. 코피와 늦잠 운운하며 지각 사유를 실토하였습니다.
꼭꼭 씹어 밥을 먹고, 가방을 짊어진 조안이를 토닥이며 학교까지 함께 씩씩하게 뚜벅뚜벅. 문 안 열어주면 어쩌지, 혼나면 어쩌지 등등 온갖 상황을 시뮬레이션 하던 딸은 최선의 방책 하나를 뽑아냅니다. “아빠가 교실까지 같이 가줘.”
때마침 쉬는 시간이었고, 담임에게 목례하며 조안이를 살포시 교실로 떠밀었습니다. 태연하게 자리에 앉는 지각생을 친구들이 경외의 눈빛으로 둘러싸네요. 아이들이 딸에게 묻습니다. “어디 갔다 왔어?”
미니미를 학교까지 무사히 배달했음을 가장에게 보고하고, 다음 미션을 수행하였습니다. 후쿠오카에서 아내가 노획한 희귀템들을 모교병원 은사님께 보내고자 우체국까지 들렀네요.
자, 이젠 저를 직장으로 보낼 차례입니다.
꼭꼭 씹어 대만 샌드위치 메이젠을 먹고, 노트북 가방 짊어진 저를 토닥이며 병원까지 씩씩하게 뚜벅뚜벅. 함께 걸으며 속삭여준 오디오클립 속 귀인들은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과 <지각의 현상학>을 남긴 메를로 퐁티입니다. 차원이 남다른 그들의 통찰에 경외의 눈빛 뿜고, 일터에 떠밀리듯 들어갑니다.
퇴마까지 할 기세의 보건의사로, 병마에 휩싸여 미간 찌푸리는 환우들을 토닥입니다. 까르보나라 만들려다 오른손 약지 가죽이 너덜너덜 까진 청년 붙들고 정성껏 한 땀 한 땀 바느질. 살이 잘 붙으려면 담배는 잠시나마 끊는 게 좋다고, ‘안은영 혹은 아는 형’처럼 살갑게 대했더니 하정우 운운하며 덕담을 곱빼기로 돌려주네요.
차에 치여 뒷목과 허리 아프다는 아재들, 술 마시고 휘청거리다 발목을 접질렸는데 그만 뼈까지 부러진 아가씨, 5층 사무실 창에서 뛰어내려 옆 건물 4층 옥상으로 착지하다 혀까지 깨문 아저씨 등을 돌봅니다. 어쩌다 달밤에 ‘파쿠르’를 하시게 됐냐고 여쭈니, 자초지종을 실토하시네요.
야근하고 퇴근하려는데 1층 출입구가 덜컹 잠겨 있더랍니다. 어떻게든 귀가하겠다는 일념으로 방법을 모색하는데, 이웃 빌딩이 눈에 들어오셨대요. 덜컥 겁이 났지만, 눈 질끈 감고 투신. 혀를 내두르는, 아니 깨무는 용단으로 자유의 몸이 되셨지만 발걸음이 아주 자유롭진 못했습니다. 뺑소니차에 치인 듯 양발 통증을 호소하셨어요.
사진 찍어 살펴보니 다행히 골절은 없었습니다. 아픔이 얼른 가시길 바라며 진통제와 근이완제 처방했네요. 제 직장에서 한 발 한 발 빠져나가는 환자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김영민 교수님 칼럼, ‘노예가 되지 않는 법’ 한 토막을 떠올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다니다 보면 누구나 가끔 확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나. 이게 다 뭐 하자는 짓이지 하는 생각이 뺑소니차처럼 자신을 치고 달아날 때가 있지 않나. 상대적으로 편한 직장에서 ‘꿀을 빨고’ 있다고 해서 그 뺑소니차가 비켜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존재가 수단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 때면, 자신을 제약하는 권위를 납득할 수 없을 때면, 다시 말해 자신이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라는 느낌이 들 때면, 누구나 그 난폭한 뺑소니차에 치일 수 있다.
다행히 아직 뺑소니차에 치이지 않아, 가끔 지각은 할지언정 직장에 붙어 있습니다. 자전거 끌고 가다 차에 치여 무릎 아프시다는 어르신 살피고, 둥근 해가 발그레 뜬 시각에 퇴근합니다. 밤 늦게 5층 직장에서 탈출하셨던 분도 아침 일찍 1층 출입구로 뚜벅뚜벅 출근하셨겠지요.
자신의 존재가 자식들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어도 기꺼이 감내하는,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경외롭게 응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견공, 스누피의 주인인 찰리 브라운의 말처럼 보통 아빠들에겐 아주 많은 격려가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