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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부건 Jan 20. 2020

꽂혀야 꽃이야

양수생고기 신년회


분당 심박수가 230을 웃돌던 심계항진 청년을 고요한 새벽에 맞이하였습니다. 아데노신 6mg을 투여하니 PSVT(paroxysmal supraventricular tachycardia, 발작성 심실상성 빈맥)가 사르르 진정되네요. 아침 9시 45분까지 당직실에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두툼한 촬영  대본을 촤르르 출력한 뒤 10시 직전에 울산행 버스에 후다닥 올라탑니다.



오후 1시 직후에 울산에 당도하여 아기 둘(한 아이는 제왕절개, 다른 아이는 자연분만)의 출시를 돕고 당직을 마친 아내와 현대백화점 지하에서 재회합니다. 야오마라탕 2단계, 생면을 주문하여 꿔바로우 곁들여 호로록 흡입했네요. 당직의 피로를 토닥토닥 진정시키는 맛입니다.


하조안 어린이는 <키자니아>에 다녀왔어요. 간이식 수술을 했답니다.

영어학원 가는 조안이 배웅하고, 아지트 침실에서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해 질 무렵, 아내랑 룰루랄라 대구로 향합니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교수님께서 이끄시는 지식 기반 패거리 ‘어따대구’ 모임 참석차. 신년회는 <양수생고기>에서 진행됐습니다.


올해의 공연도 기대가 됩니다.

작년 8월, 백 교수님의 시네마 콘서트 뒤풀이 장소였죠. 당시에 각종 요리 맛보고 깜짝 놀라 두근두근 심계항진이 생겼던 곳입니다.


주연, 조연 가릴 것 없이 모든 캐릭터가 돋보이는 식탁.
그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감자전.
꽃잎 떼어 먹듯 질겅질겅.

양수(positive number) 타이틀에 부합되게 럭키세븐 7명이 집결했고요. 바삭한 감자전과 싱싱한 뭉티기와 촉촉한 육회와 쫄깃한 문어와 든든한 곱창전골을 차례로 해치웠습니다.


맛있게 생겼는데, 생긴 것보다 더 맛있습니다.

역시나 모든 요리가 흡족했어요. 사장님께서 직접 만드신 육포에 홍합 미역국과 동치미까지 완벽하게 훌륭했습니다.


육포가 촉촉해요.
곧장 해장되는 진국.

아내 곁에 앉아 맞은편에 앉은 멤버들(교통예보관 남궁성 박사님, 정신과 전문의 경근 선생님, 백 교수님)을 바라보니 공통점이 있더군요. 다들 코가 잘생기셨더라고요. 뭔가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덕후의 상이었습니다.


응급 퀴즈. 위아래 다른 그림 찾기.

남궁 박사님은 공인된 브롬톤 마니아이시고 백 교수님이야 덕업일치의 일상을 살고 계시죠. 덕업일치의 소산인 『영화, 도시를 캐스팅하다』는 <박하사탕>의 ‘제천’을 비롯한 14개 도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평범한 도시가 영화를 통해 특별한 도시가 되어가는 흥미진진한 사례들이 백 교수님의 명징한 문장에 실려 양수생고기의 정갈한 요리처럼 푸짐하게 담겨 있습니다.


단숨에 읽히는 명문장 맛집입니다. 전 울산에서 대전 가는 버스 안에서 완독했어요.

경근 선생님은 뭔가에 꽂혀 계실까 의아했는데, 처음 모임에 참석하신, 이집트로 떠날 예정이시라는 국향 선생님의 등장으로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오디오에 조예가 무척 깊으셨어요. 일절 안 하던 대출도 오디오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위해 하고, 더 짱짱한 사운드를 구현하고자 스피커 뜯어서 새로 조립하기도 했다는 두근두근 덕후질 이야기에 귀까지 호강한 만찬이었습니다(백 교수님의 오디오 덕후 과거사는 덤).


갑골문 원형을 알아야                             한자들 정체가 명확해집니다.

덕德이란 한자는 직直과 행行의 이종교배로 완성된 글자랍니다.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곧장 행하는 , 누가 뭐래도 곧게 나아가는  덕의 본질이자 근간일 수 있겠습니다.


德懋耳鳴하고 過懲鼻息하라.
덕을 힘쓰기는 귀울림같이 하고
허물 다스리기를 코로 숨쉬듯 하라.
道典 8:36:6



묵독 클럽 이끄실 엄 선생님은 박재서 명인 안동소주에 꽂히셨어요. 아는 기자 연락받고 먼저 자리를 뜨셨는데 영혼은 술자리에 꽂아두고 가신 듯했습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부터 읽어나갈 예정이라는 묵독 클럽은 술독 클럽이 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교통방송의 박 아나운서께선 몸살 심한 컨디션 무릅쓰고 모임에 들러주셨습니다. 뭉티기 한 점 드시지 않으셨음에도 새하얀 봉투에 담아 푸르른 회비 꽂아주셨어요(쾌유를 빕니다). 이 모임의 오묘한 결집력은 아직까진 해석이 불가합니다.


정상 이상의 덕후질로 성덕을 지향합니다.

뭔가에 꽂힌 분들의 지패(지식 기반 패거리), 매달 이어지는 집회와 모이는 지폐가 참 소중합니다. 꽃 중의 꽃인 인간꽃이 만개하려면, 뭔가에 제대로 꽂혀야 합니다. 뭐든 두근두근 꽂혀야 꽃같이, 불꽃처럼 살겠죠.


예약은 필수입니다. 그냥 찾아갈 경우, 대기를 감수해야 합니다.

소고기 팔아서 물고기 사드신다는, 고기에 제대로 꽂히신 양수생고기 사장님 부부의 배웅을 받으며 식당을 나섰습니다. 여러모로 포만감 느끼며 심야에 울산으로 돌아왔네요. 다음 모임이 벌써 기대됩니다. 참신한 고기 앞에서, 씨 유 어게인!



방안꽃이 제일이니라.
다른 것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하면
사랑이 멀어지는 법이나
사람은 볼수록 정이 드는 것이니
참으로 꽃 중에는 인간꽃이 제일이니라.
道典 8: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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