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구온천과 <이게대게>와 <마당쇠 과메기 전문점>
덕구 가는 길에 왕비천 <이게대게>에 들렀습니다. 게살 돌솥비빔밥에 게살 비빔만두 꿀꺽 삼켰네요. 게짜박이가 별미입니다. 제대로 밥도둑이에요. 맵게 생겨선 맵지 않고, 짜지 않고 달달합니다.
게집 사장님이 개집에 저녁밥 놔주시는 모습 물끄러미 바라보다 짙은 어둠을 뚫고 덕구온천호텔로 건너갔어요.
6개월 만에 재회한 길냥이들이 우르르 우리를 반겨줍니다. 차에 상비해둔 별미 간식을 골고루 보시하니 다들 열광하네요.
아끼는 아우, 재우가 잡아준 방은 상상 이상으로 넓었습니다. 일군의 대학생들이 MT 와서 왁자지껄 술 마시다, 학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며 픽픽 쓰러져도 여백의 미가 돋보일 정도로 말이죠.
물 좋은 동네에서 속세의 묵은 때 빡빡 벗기고, 지리멸렬한 몸살 기운까지 모조리 뽑아냅니다. 새해부터 수영 강습에 돌입한 조안은 재우 삼촌의 일터인 스파월드에서 첨벙첨벙 물놀이 즐겼네요. 물씨답게 씐나게.
간밤에 동갑내기 예비 부부가 방에 찾아와 달달한 마카롱 건네주더니 제게 넙죽 큰절을 올리더군요. 이 선남선녀는 제가 꾸리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만났습니다. 제가 사랑의 오작교 노릇을 한 셈이죠. 세상에서 가장 뿌듯한 거사입니다.
축의금 봉투 뭉치를 신랑의 가슴팍에 찔러주며 백년해로의 꿀팁을 전했어야 했는데, 미처 그 한 마디를 못 건넸습니다. 하여, 글로 남깁니다. 매일 수시로 복창하세요. “항복하면, 행복해요.”
덕구에서 울산으로 내려오는 길에 포항에 들렀습니다. 겨울 별미인 과메기 음미할 곳을 가장이 엄선했어요. <마당쇠 과메기 전문점>은 과하게 허름합니다. 허우대는 허약한데, 미뢰에 가해지는 위력은 가히 ‘마당쇠’급이네요. ‘전문점’ 타이틀을 달 자격이 충분합니다.
회나 해산물을 무척 좋아하지만, 과메기를 즐겨 먹진 않았어요. 특유의 비릿한 향이 비호감의 주된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그간 씹었던 건 사이비였네요. 비리지 않고 쫄깃합니다. 잘 배합된 초장이 풍미를 더하네요.
잘 숙성된 과메기의 품격을 체감하며, 숙성된 부부 관계를 각성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죠.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속 찌질한 영화 감독 구경남(김태우)도 선배의 아내가 된 고순(고현정)에게 말합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짝을 만나는 데 있어.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자기와 가장 잘 맞는 짝을 만나면 사람은 정말 행복해진다니까.”
그 기적이 일상이 되는 게 이상적인 부부 생활입니다. 일상 이상의 비상한 노력이 뒤따라야 행복한 기적이 이어지겠지요. 남달리 탄탄한 내공의 아내를 위해 아우 재우가 마당쇠처럼 우직하게 헌신하리라 믿습니다. 운명의 악보에 따라 빠르게 느리게, 높게 낮게 여생이 다채로이 변주되겠지만 혼인 서약의 초심만은 삑사리 없이 연주해내길 바랍니다.
인생의 슬픔은 일상의 작은 기쁨들로 회복된다죠. 당장은 혹독한 겨울이지만, 훈훈한 봄이 반드시 옵니다. 서로를 토닥이며 웃음과 감동이 짬짜면처럼 함께 하는 나날 흠뻑 누리세요. ‘아내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었다’고 회고할 날이 올 겁니다.
노사연의 <바램> 한 소절처럼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한결 무르익은 모습으로 정겹게 재회합시다.
부부란 인도(人道)의 시작이요
만복(萬福)의 근원이니라.
그러므로 한 남편과 아내가
복으로써 일가를 이룸이
천하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고
화(禍)로써 한 가정을
이룸이 천하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니라.
道典 9:12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