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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부건 Apr 17. 2020

라마크리슈나 따라잡기

남인도 탐방

포트 조지 박물관 앞의 견공.
카메라 반기는 마하발리푸람의 견공.
마하발리푸람의 디오게네스들. 인수공통와선臥禪.

라마크리슈나는 자신을 찾아오는 어느 누구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단 하나의 영혼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개의 형상으로라도 거듭 태어나리라!" 그는 말했다. "단 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라면, 나는 2만번의 생(윤회)을 포기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을 돕는 일은 그토록 거룩한 것이다."


마하발리푸람의 해변 사원(Sea Shore Temple).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변 사원 입구의 상인. 왜소한 체구의 사내로, 돕고 싶은 마음이 마구 솟구치더군요.

프랑스 소설가 로맹 롤랑이 그린 <라마크리슈나>는 상생의 화신입니다. 인도식 볶음면 매기(Maggi) 등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찾아간 곳은 첸나이의 라마크리슈나 사원(RAMAKRISHNA MATH).


페더스 호텔에서 인도식 볶음면 매기(MAGGI)와 첫 대면. 김치 및 김치찌개와 곁들여 맛있게 흡입합니다.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내 사랑하는 매기야.”

라마크리슈나의 사상을 이어 힌두교 부흥운동을 주장한 비베카난다가 1897년에 첸나이에다 설립했답니다.


아늑한 성소에서 잠시 안식.
사원 옆구리의 야자수가 푸른 하늘 아래에서 푸르름 뽐냅니다.

잘 가꾸어진 야자수 정원과 원색의 건물이 새들이 노니는 푸르른 하늘과 어울려 오묘한 삼합을 완성하네요. 신발 벗고 따스한 지열을 맨발로 빨아들이며 성전에 들어갑니다.


라마크리슈나 성상.

정면 중앙에 라마크리슈나가 좌정하고 계시네요. 라마크리슈나는 인도의 3대 성자로 손꼽히는 19세기 사상가입니다. 8세기의 인도 최고 철학자 샹카라(Shankara)와 수억 명의 신자를 거느린 석가모니 불타(佛陀)가 나머지 두 성자라는 점을 헤아린다면, 인도에서 그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성상(聖像)을 마주한 인도인들이 오체투지로 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일행들과 잠시 앉아 고요히 명상.

브라만 출신의 라마크리슈나는 젊은 시절 토타푸리의 설교에 감명을 받아서 행자 생활을 시작합니다. 기도에 열중하여 삼매에 들기도 하고 숲에서 12년 동안 고행하며 신비경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첸나이 박물관의 비슈누.

명상과 고행을 중시하는 열렬한 비슈누파 힌두교도였으나, 이슬람교와 기독교에도 각각 스승을 두고 깊이 사색한 그는 결국 모든 종교가 똑같은 진실을 품고 있다는 통찰에 도달합니다. 1886년 콜카타에서 후두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힌두교 전통을 현대에 되살려 인도인의 자존감을 고취시켰고, 모든 종교의 조화를 설파하여 대동세계의 이상을 드높였습니다.


첸나이 힌두 사원. 시바 신의 날이라 더욱 북적입니다.
마일라포르 카팔리스와라르 (Mylapore Kapaleeswarar).

그의 사후, 제자들은 인도 각지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각국과 영국·미국·프랑스 및 남미 등지에 라마크리슈나 미션을 설립하여 그의 뜻을 이었습니다. 특히 스와미 비베카난다가 스승의 숭고한 사상을 세계 여러 곳에 전파하는데 크게 기여하죠.


라마크리슈나 오른팔, 비베카난다.

하여, 첸나이 성전에서도 라마크리슈나 성상 우측에 비베카난다 초상화를 모시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비베카난다 초상화 모셔진 좌측에 좌정하여 명상하네요(여인들은 라마크리슈나 아내, 샤르다데비 초상화가 모셔진 성전 우측에 착석합니다).


라마크리슈나 애제자와 아내.

비베카난다는 캘커다 대학에서 수학한 수재였으며, 고결한 인격자로 설득력이 풍부했습니다. 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에 크게 감화된 그는 6년 동안 히말라야 산중에서 수행하며, 기존에 축적한 서구적 교양과 지성과 열렬한 힌두교 신앙을 접목하였습니다.


신의 이름을 쓰며 염원하는 이들이 힌두 사원에 잔뜩.

1893년 미국의 시카고 종교 대회에 참석한 그는, 각 종교의 대표들이 자기 종교의 좋은 점만 주장하는 와중에 “모든 종교는 결국 하나의 진리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라는 간단한 메시지만 발표했답니다.


인도 환단고기 북콘서트에서도 비베카난다가 언급되었습니다.

당시에 청중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낸 비베카난다는 1900년까지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서양인들에게 힌두교의 교리를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당당한 행보는 식민 지배에 신음하던 인도인들에게 적잖은 위로가 됩니다.


If the poor cannot come to education,     education must go to them.  
Swami vivekananda


대한사랑 회원들과 기념 촬영. 숨은 민석 찾기.
매사에 엄지 척!

성전 입구의 서점에 들러 바가바드 기타 등을 뒤적이고, 라마크리슈나 매스를 벗어납니다. 라마크리슈나의 일갈 하나를 새삼 떠올립니다.


2020년 2월 23일 인도 환단고기 북콘서트 성료.

“신은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대와 이야기하고 그대를 보듯이 신을 볼 수도 있으며 신과 대화할 수도 있다. 그런데 누가 애써 그리하겠는가? 사람들은 자신의 부인과 자식과 재산 때문에 아낌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신에 대한 사랑으로 눈물을 흘리는 자 어디에 있는가? 정녕 신을 향한 충심으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면, 신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후천은 사람과 신명이
하나가 되는 세상이니라.
모든 사람이 불로장생하며
자신의 삼생(三生)을 훤히 꿰뚫어 보고
제 분수를 스스로 지키게 되느니라.

道典 2: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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