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조안 참관 수업
입동이다. 계해월이 시작됐다. 내년 갑진년의 갑목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첫날에, 뜻깊게 아지트 인근의 초등학교로 향했다. 이게 얼마 만인가. 하조안 입학식 때, 몇 년 전 참관 수업 때 가봤더랬다. 학교 중앙 현관에서 신발에 덧신을 씌우고, 4층까지 올라가 우회전. 5학년 5반에 당도하여 CCTV처럼 교실의 아이들과 담임 선생님과 수업을 지켜보았다.
사회 수업 시간이었고, 우리 역사 주요 대목의 키워드들을 조별로 조사해서 칠판에 붙이고 아이들이 한 마디씩 하였다. 고조선에서 시작해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국통맥 교육 체계를 지켜보노라니, 역시나 씁쓸했다. 일제강점기에 심어진 식민사관이 고스란히 복붙되어, 광복된 조국의 21세기 아이들을 여전히 세뇌하고 있었다.
2096년 동안 47대까지 이어진 단군조선은 팔조금법 운운하며 스쳐가고, 1565년 동안 배달국을 이끄신 18대 환웅 천황님들은 곰과 호랑이와 마늘과 쑥 타령 속에 파묻혔다. 바나나 알맹이 버리고 껍질만 질겅질겅 씹어대는 강단사학의 상고사 인식 수준에 오심과 구토가 솟구쳤지만, 한숨과 심호흡의 중간쯤 되는 숨 고르기로 공분심을 다독였다.
내용을 떠나서 수업의 형식은 내 맘에 쏙 들었다. 우리 역사의 주요 키워드들을 조별 스피드 퀴즈 형식으로 솔깃하게 각인시키고, 학우들이 각자 낸 문제들을 모바일 게임 형식으로 풀면서 쫄깃하게 되새기게 하였다.
문제를 풀 때, 조안이 옆으로 다가가서 나도 지혜를 보탰는데 흥미진진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공부를 놀이처럼, 게임처럼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올해 2학기 학급 임원 선거에서 ‘모든 일에 하드캐리 하는 하조캐리가 되겠다’는 (아빠딸스러운) 공약을 걸었던 하초딩은 기대 이상의 바른 자세로 수업에 집중하였고, 능동적으로 학습 과정에 동참하였다. ‘좀 긴장이 되더라’는 하조안을 쉬는 시간에 토닥토닥 격려하고, 영어 수업까지 묵묵히 참관한 뒤, 하조안의 모교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간헐적 아빠 역할을 그럭저럭 바른 자세로, 능동적으로 수행한 나를 토닥토닥 격려하며, 가장의 직장을 향해 페달을 쫄깃하게 밟았다. ‘하민캐리’가 되어 간헐적 남편 역할을 솔깃하게 수행하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