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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우정 May 08. 2024

출장세차와 광부

회사 왜 나왔지?

21년을 한 회사에 다니며 여러 직무를 맡았다. 주어진 직급에 최선을 다하니 다른 업무, 다른 직급이 주어지며 주마등처럼 20년이 지나갔다. 퇴사 전 마지막 직무는 교육사업을 하는 회사의 기획 팀장이었다. 퇴사의 변을 하자면 자기 주도성의 부재였다. 사업부 현장에서의 직무는 제한적이나마 자율성이 보장되었고 그 자율성으로 시도한 업무에 따라 신상필벌이 가해지는 것이었지만 본사 발령 이후 6년간의 업무는 오로지 1인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었고, 성과가 있더라도 누구의 성과인지도 불분명하며 사내 정치가 횡행했다. 중소기업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2021년 12월에 이제는 머리보다 몸을 쓰는 일을 하리라... 이제는 인간관계와 조직의 스트레스가 덜한 일을 하리라며 퇴사를 하고 호기롭게 출장스팀 세차업을 시작했다. 세차창업을 위한 교육과 장비준비로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출장스팀세차는 고객이 주문을 하면 차량이 있는 곳으로 가서 스팀으로 내부외부를 세차하는 시스템이다. 뭐가 뭔지도 모른 체 열심히만 하던 6개월 차 즈음에 지하 6층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아파트 지하 6층은 처음이다. 더구나 그날은 일정이 꼬여서 8시에 시작을 했었다. 차량 한 대당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리는 게 기본이니 빨라야 9시 반이 넘어야 작업이 끝날 것이다. 지하 6층도 처음이고, 저녁 9시가 넘도록 일하게 된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지하 주차장엔 차량이 드문드문 있고, 1시간이 지나도록 사람하나 지나가지 않는다. 지하 6층 주차장의 고요함 속에 나 홀로 맹렬하게 차와 싸우고 있었다.      


마 전, 나보다 이 일을 1년 먼저 시작한 지점장이 세차 중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어 번 만난 적이 있었던 분이다. 지하 주차장에서 일을 하다 벌어진 일이라고 전해 들었다. 그렇게 쓰러져 한참이 지나서야 발견되었고,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더 이상 힘들게 몸 쓰는 일은 못하게 됐다고 한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고3인 딸이 있던 그분은 월 7백 이상을 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정도를 벌어야 한다고 했다. 그 무렵 이제 막 3개월 차에 접어든 나는 월 7백이란 말에 희망을 느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돈을 벌려면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이 일은 많이 하면 수입이 많지만 몸이 힘들고, 적당히 하면 수입이 적어 마음이 힘들다.


가장으로서 물불 가리지 않고 일했던 그분은 기왕에 지병이 있었고 무리해서 일을 하다 쓰러진 것이었다. 남 일이 아니었다. 내가 만약 지금 여기서 불의의 일로 쓰러진다면?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얼마 뒤에나 발견이 될까? 머리는 덜 쓰고, 몸 쓰는 일을 하자고 시작했는데 오만가지 잡생각에 머리를 쓰고 있다.     


'지하 6층이면 거의 탄광이구나'

'광부는 석탄을 캐고, 나는 먼지와 더러움을 캐는군'

'이런 일 하려고 잘 다니던 회사 관뒀나?'     


2시간의 세차를 마치고, 전후 사진을 고객에게 전송한다. 세차 결과에 대한 평가는 복불복이다. 물론 어느 정도 수준은 돼야겠지만 몇 가지 공정을 뛰어넘어도 고객이 원하는 부분이 깨끗해지면 칭찬을 받는다. 반대로 10가지를 열심히 잘해도 한 가지 실수를 하면 욕을 먹는다. 그러니 전체적으로 반드시 내 손이 가야 한다. 그렇게 세차를 마치고 고객에게 비포, 애프터 사진을 전송한다. 사진만으로는 세세한 결과물을 알 수 없지만 대강의 결과물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건조한 한 마디가 답장으로 돌아온다. 그 한마디에 땀을 식히고 지하를 벗어난다.     


차를 몰아 지하 6층에서 빙빙 꼬인 길을 돌아 지상으로 올라간다. 1층에 오니 천호역 사거리는 언제나처럼 번화하고 시끌벅적하다. 온갖 소음과 네온사인과 군중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강원도 탄광에서 서울에 온 기분이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어떤 일이라도 좋으니 보람 있는 나만의 일, 나만 열심히 하면 결과가 눈에 보이는 일을 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 부딪혀 몸이 힘들고 감정적으로 약해지면 '왜 나왔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아직 익숙함과 기술이 부족하다. 그러니 익숙해질 때까지, 기술이 늘어날 때까지 버텨야 한다. 앞으로도 몸과 마음 흔들릴 때가 있겠지만 초심을 잊지 말자.


‘왜 나왔지?’라는 생각이 '왜 빨리 안 나왔지?'로 바뀌도록 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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