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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Dec 13. 2019

진실을 향한 길에서 맹목적 믿음은 금물입니다

[내가 만난 휴먼 디자인]04. 휴먼 디자인을 대하는 과학적 자세

■ 인간은 진실이 아닌 것도 진실이라고 쉽게 믿을 수 있는 연약한 존재다


내 혈액형은 A형이다. 어렸을 때부터 A형은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예민하고 자기주장이 약하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왔던 터라, 세간에 떠도는 그 특질에 대한 나의 믿음은 부지불식간에 내 무의식 깊숙한 곳까지 침투했다.


경험상 어딜 가나 혈액형 얘기가 단골 소재가 되지 않은 적은 없었던 듯싶다. 아마도 혈액형이 각 개인의 성격이나 특질을 규정짓는  대표적 요소 중 하나로 대중들에게 자리매김해 온 탓일 것이다.


그렇게 별 대수롭지 않게 혈액형을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으면서 성별에 따른 혈액형 특징, 혈액형 궁합 등에 대한 얘기를 그 누구보다 즐겼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혈액형으로 사람을 쉽사리 판단하는 그 기준이 참으로 짜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존과 다른 새로운 집단에 들어가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어떤 때는 O형이라고, 어떤 때는 B형이라고 거짓을 말하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본 적이 있었다. 정보에 따라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필터가 과연 어떻게 바뀔는지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종의 혈액형 '실험'을 개인적으로 한 셈이었다.


처음엔 거짓을 말하는 것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혈액형이라는 것이 학력, 경력, 연봉, 직업 등과 같이 비중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이건 일종의 실험이니깐 이 정도야 도의적으로 문제 될 건 없을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스스로 합리화했다. 그렇게 나는  두 그룹을 대상으로 실험을 시작했다.


그 이후 이미 거짓으로 유포한 사실을 지속하기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계속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하곤 했는데, 본의 아니게 그 기간이 무려 4년이나 지속됐다. 아무리 단순한 것일지라도 거짓말을 지속하는 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 속에서 혈액형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도 바로 그 기간 동안이었다.


어쨌든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본의 아니게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속되었던 혈액형 실험에 대한 나의 짤막한 결론은 이것이다.


'인간은 진실이 아닌 것도 진실이라고 너무나 쉽게 믿을 수 있는 연약한 존재다'


내가 지나치리 만큼 예민하고 소심하고 신중하게 굴 때 조차도, 나를 O형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나를 매우 사교적이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줄곧 믿고 있었고, 나를 B형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나를 차도녀라고 부르며 내가 호불호가 명확하고 화끈하거나 차갑기도 한 그런 사람이라고 줄곧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혈액형 일화는 내 삶의 해프닝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무엇이든 쉽게 믿어버릴 수 있는 이와 같은 상황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있는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탁월한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은 이와 같이 무언가를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는'과학적 사고의 부재'에 대한 위험성을 따끔하게 경고한 바 있다.


'이 시대는 과학기술이 삶의 구석구석에 침투한 과학의 시대다. 이 시대는 의심의 여지없이 과학적인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을 모른다. 증명되지 않은 수많은 이론은 현대에도 판을 치고 있으며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그것들을 수용한다'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것들 중에는 거짓이 숨이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편견도 결국 그들이 믿는 가설일 뿐이다'


■ 과학적 사고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파인만이 말한 '과학적 사고'란 무엇일까?


파인만은 과학의 궁극적인 결과물이자 핵심은 새로운 '발견' 그 자체에 있으며,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불확실하다'는 사실뿐이라고 말한다.


알다시피 인류는 기존과 다른 새롭고 놀라운 '발견'에 의해 지(知)의 틀이 뒤집힐 때마다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고 불릴 만한 획기적 사건을 지속하며 진화해 왔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고, 과연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며, 인간을 둘러싼 이 세계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인류의 그칠 줄 모르는 호기심이 낳은 지(知)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기존에 근본 원리나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또 다른 실험에 의해서 흔들리며 지의 기본적 틀이 바뀌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일례로 16세기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주장된 지동설은 지구 중심의 세계관인 천동설을 확 뒤집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뉴턴 이래 고전 물리학의 세상을 확 뒤집어 물리적 세계상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


즉 또 다른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면 '이것이야 말로 진리다, 이것이 바로 보편적 진리다' 했던 것들이 전부 뒤집히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과 시각은 물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새로운 발견들이 해를 거듭해 오면서 인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함께 문명의 진보를 이룰 수 있었는데, 파인만은 이것의 원천을 자신의 무지함을 떳떳이 인정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것에 대해 열려있는 '과학적 태도'라고 말한다.


파인만은 의심과 불확실함은 결코 몰아낼 수 없기에, 지금 옳다고 믿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수용함으로써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항상 열어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덧붙여 그는 우리가 과학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관찰'과 '실험'을 통한 '증명'이라는 과정이 반드시 수반되기 때문임을 분명히 했다.


'어떤 정보가 사실일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실제 조사, 실험을 통해서 누군가가 증명해서 옳다는 증거가 있기 전까지는 믿는 것은 위험하다. 동시에 똑같은 과정으로 아주 면밀히 실험을 하기 전까지는 그 사실에 대해서 반증할 수 없다'



■ 휴먼 디자인을 대하는 과학적 태도



그렇다면 인간 이해에 대한 새로운 지식인 휴먼 디자인을 대하는 과학적 태도란 어떤 것일까?


휴먼 디자인의 기원은 휴먼 디자인 창시자이자 메신저인 Ra Uru Hu가 후에 그가  보이스(voice)라고 칭한, 인간의 관점으로 봤을 땐 마치 도깨비와 같은 것으로 인지될 수밖에 없는 어떤 것으로부터 전달받은 정보라는 측면에서 분명 신비적인 요소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이 그와 같은 정보의 출처로 인해 갖게 되는 어떤 선입견이 존재할 수 있음도 분명하다.


내 경험상으로는 이 지식의 고 맥락적인 정교함으로 인해  삶의 크고 작은 오해와 의문들이 해소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낯설고 불편한 무언가가 내 안에 가득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휴먼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휴먼 디자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마야(maya)에 대한 믿을 만하고 예측 가능한 논리적 패턴에 대한 것이다. 즉  이는 실험을 통해 누구나 검증 가능한 지식이라는 말이다.   휴먼 디자인의 핵심은 '실험'에 있다.


앞서 간략히 살펴본 바와 같이 지(知)의 거대한 흐름은 늘 기존 고정관념의 오류를 증명하는 고된 논쟁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갈릴레이가 새로운 낙하운동 법칙을 발견했을 때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견했을 때도, 양자역학의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을 때도, 처음에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만일 휴먼 디자인 지식이 다소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아마도 이것이 마야와 인간에 대해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었던 이해의 틀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휴먼 디자인을 '이단적(heretical)'이라 일컫는 이유기도 하다.


휴먼 디자인 바디 그래프에는 논리회로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미래의 안정적 기반을 구축하는 역할을 하는 모든 '논리적 과정'은 끊임없는 '실험'과 호된 '비평'을 견뎌내는 오랜 기간을 반드시 거쳐 패턴의 유효성을 '검증'하는 것이 제 일의 소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휴먼 디자인이든  또 다른 어떤 지식이든 함부로 맹목적으로  믿지 말고 그 패턴을 삶 속에서 '실험' 해 보길 권한다.


■ 진실을 향하여


지금은 엄청난 정보가 말 그대로 홍수처럼 범람하는 시대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때에 무엇이 진실인지를 찾고 싶은 것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고, 동시에 무비판적으로 무언가를  쉽게 믿고  잘못된 정보의 오염으로 균형 감각을 잃기 쉬운 연약함 또한 우리의 어쩔 수 없는 본성이라면, 어떤 것에 대한 지나친 신념과 지나친 독단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경계,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수용할 수 있는 자유롭고 열려있는 과학적 태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치 않는 것 같다.


파인만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단 한 가지는 '불확실하다'는 사실뿐인 상황에서, 이러한 태도야말로 '진실'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나의 진실을 찾아가는 혼란스러운 여정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이 길에서 혼란스러운 건 아주 당연한 일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 길은 앞으로도 계속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와 당신의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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