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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Dec 29. 2019

죽음을 기억하라(Momento Mori)

[내가 만난 휴먼 디자인]07. 휴먼 디자인이 말하는 죽음의 의미

■ 유독 빛났던 RM의 유엔 7분 연설

 

지난해 9월, 케이팝 그룹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의 열정적인 목소리가 돋보였던 '유엔 7분 연설'이 문득 생각난다.  그의 연설은 과거 그가 부딪혔던 숱한 장애물과 어려움을 극복해 온 진솔한 고백으로 시작됐다.  



"나는 9~10살 무렵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고, 스스로 남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자신을 집어넣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목소리를 잃게 되었다. 그리고 내 몸의 작은 목소리를 듣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전 세계인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는 격려의 메시지로 마무리했다.



"사람들이 희망이 없다고 말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고, 무엇이 흥분시키고, 무엇이 심장을 뛰게 하는가"


왠지 모를 피로감, 무기력감이 느껴지는 최근 우리 사회 분위기 가운데 그의 연설은 유독 빛이 났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리더 RM은 원고를 잡은 손이 떨렸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그 구누도 떨림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열정, 진솔함, 패기로 가득했던 그의 연설에는, 아이큐가 너무 높아서 측정 자체가 불가하다는 어느 명문대 출신 뇌섹녀의 고백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가슴 뭉클함이 있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 그로부터 감동을 받은 것은, 우리가 들은 그의 목소리가 정말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였고, 이 세상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이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짤막한 연설을 듣고 짤막한 생각이 스쳤다. 눈빛도 목소리도 참 섹시하고 멋지구나!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자신을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나도 언젠가는 저런 눈빛과 목소리를 갖게 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약 3~4년 전 한참 웰다잉이라는 말이 유행어로 퍼졌을 쯤에 입관체험을 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RM이 말했던 '내 몸의 작은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던 때가 바로 그때였기 때문이다.



■ 나의 입관체험 이야기


입관체험 당시, 잘 짜인 식순에 따라 복장을 차려입고 사방이 꽉 막힌 답답한 관에 잠시 들어갔다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지금 내게 남아있는 기억은 관에서 나와 촛불 앞에서 유서를 쓰기 위해 펜을 들었을 때다. 이상하게도 평소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아서 평소의 나라면 꺼내지도 않았을 당혹스러운 얘기들로 유서 한 장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유서를 쓸 당시 오랫동안 내 가슴 깊은 곳에 파묻혀 있었던 아주 작은 목소리는, 그렇게 고요한 공간이 아니었으면 들리지도 않았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부모님과 가족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드리지 못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더 잘해주지 못하고, 용돈을 더 많이 드리지 못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리고 내 진짜 속 마음과 달리 모질게 독화살처럼 내뱉었던 수많은 말들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용서를 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도 있었는데, 남들 눈치 보며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바보처럼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한 채 나이만 먹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극심하게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유서를 다시 꺼내 보니, 그 당시 구구절절 느꼈던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손이 너무 오글오글거리기도 해서 결국 유서는 휴지통 신세를 지게 됐지만, 그 당시 잠시나마 문득 깨달았던 기억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들은, 평소 내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것을.


삶에서 정말 의미 있는 것들은, 평소 잊고 살아가기가 정말 정말 쉽다는 것을.


사회의 시선과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추구해 온 모든 것들이,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음이란 걸 잠시나마 흉내 냈던 나의 경험처럼, 우리는 왜 죽음 앞에서 삶을 다르게 보고 다른 선택들을 내리게 되는 걸까?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음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한 오래되고 간절한 호기심과 의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류의 영원한 미개척지로 남아있는 '죽음'. 그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오직 한 가지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아주 단순한 명제뿐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 단순한 명제 앞에서 삶을 '유한'하다고 말하며 그래서 평균 80여  남짓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동안을 일생(一生)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에게 죽음은 마치 4계절이 순환하는 것처럼 아주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 하나의 사건이기도 하다.


만일 꽃이 피어있는 동안만을 두고 꽃의 일생이라 부르지 않듯이, 우리의 일생 또한 80여 년 남짓한 삶의 동안뿐 아니라 죽음의 동안까지 포함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면, 우리의 존재는 지금과는 다른 어떤 다른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앞서, 휴먼 디자인이 말하는 '죽음'은 어떤 것인지 잠깐 살펴보자.


휴먼 디자인에 따르면 죽음의 문턱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차도, 정확한 구조를 지닌 생물학적 메니커즘으로 모두 설명될 수 있다고 한다. 마치 세포가 매 순간 죽고 재생되듯, 우리 몸 역시 '죽는 기계'와도 같다고 말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핵심이 되는 3가지 요소는, 흔히 영혼이라고 불리는 승객인 '성격체(personality crystal)', 이 승객이 타고 있는 운반체인 '몸(design crystal)', 그리고 우리 삶에서 실제로 운전수 역할을 하는 '단극 자석(magnetic monopole)'이다.  


휴먼 디자인에 따르면 육체적 몸이 죽는 순간에 '디자인 크리스털(design crystal) '과 '단극 자석(magnetic monopole)'이 서로 결합되어 우리의 몸을 빠져나간다. 이때가 소위 '생물학적 죽음'이라고 일컬어지는 순간이다.


반면 '성격체 의식(personality crystal) '은 생물학적 죽음 이후 최대 72시간 동안 자신만의 독특한 바르도(bardo) 단계를 거치며 경험의 과정을 완결한다.  


'몸'은 만들어졌다가 허무하게 무너지지만, 빅뱅의 순간부터 죽지도 소멸하지도 않은 채, 이 우주와 함께 계속 빠르게 움직이며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의식(personality crystal)'은 운이 아주 좋다면 승객의 운송수단(vehicle)인 새로운 몸에 탑승해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이렇게 '승객'은 사라지거나 소멸하지 않고 우리 몸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경험하고 성장하고 진화한다.


생물학적 죽음을 맞이하는 육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삶은 유한해 보이지만, 죽지도 소멸하지도 않는 승객의 관점에서 보면 더없이 무한한 것, 이것이 우리의 일생(一生)인 것이다.


■ 죽음을 기억하라 

다시 똑같은 질문이다.


단지 평균 80여 년 남짓한 삶의 동안뿐 아니라 죽음의 동안까지  포함하는 것이 우리의 일생(一生)이 된다면, 우리의 존재는 지금과는 다른 어떤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까?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귀환하는 장군에게 '당신도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뜻의 라틴어 '모멘토 모리(Momento Mori)'를 반복해서 말하는 하인이 있었는데, 이는 승리에 도취되어 자만하게 되는 것을 경고하는 의미였다고 한다.


나는 RM의 연설 마지막 부분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고, 무엇이 흥분시키고, 무엇이 심장을 뛰게 하는가'- 을 듣다가 문득 죽음을 기억하게 됐다.  


그렇게 죽음을 기억하고 나니, 오만했던 내가 조금은 겸손해지고, 교만했던 내가 조금은 숙연해지고, 옹졸했던 내가 조금은 너그러워지기까지 하더라.   


이렇게 우리에게 죽음이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가 된다면, 아주 자연스레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숙고하게 될 것이고, 그  숙고 끝에 진정 어떤 의미가 있는 것들만 남게 된다면, 그 어떤 의미는 분명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뛰게 할 것이다.


당연히 그러한 삶이 돈, 권력, 욕심을 쫓으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그것처럼, 그렇게 무기력하고 지루하고 뻔할리는 만무하겠지.


빅뱅 이후 한 번도 소멸된 적 없다는 영혼의 작은 목소리는,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할  그 어떤 의미를 찾기 위해, 우리가 미처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오랜동안 우리의 몸을 들어왔다 나갔다 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기억하라(Momento Mori).


나와 당신의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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