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메커니즘]21. 감정 메커니즘 ②
(이전 글 : 감정 메커니즘 ① - 우리가 사는 눈먼 자들의 세상)
오늘 하루 만도 해도 오만가지 감정이 왔다 갔다 한듯하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취침 전까지 내가 느낀 감정의 개수를 말하라면 족히 10~20가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침에는 살짝 희망적인 느낌이었다가, 일을 하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가, 또 심드렁해졌다가, 괜히 우울해지기도 했다가.
난 내 기분이, 내 감정이 얼마나 널뛰기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감정이 바닥을 쳤을 때, 그때의 기분과 느낌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얼마나 진한 무채색 어둠으로 채색하는지, 그리고 내 감정이 기쁨에 하늘을 날아오르듯 춤을 출 때, 그 기분과 느낌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얼마나 밝고 경쾌하게 채색하는지 잘 알고 있다. 말 그대로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가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정작 어이없게도 이렇게 감정이 요동치는 것에는 외부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지만,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경우도 많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난 최대한 우울하거나 슬픈 감정은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았다. 아마도 사람들에게는 항상 웃고 상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사회적 고정관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난 지금도 내 우울함, 슬픔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싫다’. 소위 기분이 거지 같은 땐 나만의 동굴에 꼭꼭 숨어 최대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한다. 아니면 반대급부로 최대한 밝은 척을 하며 더 크게 웃어본다. 그래서인지 난 참 밝고 잘 웃는 아이라는, 내가 있는 곳의 분위기 메이커라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었다. 실제로 난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나의 거짓 가면에 참으로 잘도 속아주었다.
거짓 가면을 쓰지 않을 땐 일견 문제로 보이는 많은 일들이 발생하곤 했다. 친밀했던 관계가 틀어지거나 불편해지는 등 ‘관계적’ 상황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이슈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나의 낮은 감정 파동은 고스란히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진실이 아닌 그 당시의 어두운 부정적 느낌을 말하게 되고, 지금 이 상태가 잘못된 것이라는 느낌을 상대와 공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감정 파동이 미치는 영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크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에게는 내 감정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고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러한 영향 때문인지 난 더욱더 거짓 가면 속에 날 더 잘 숨기려고 애썼다. 내 감정을 속이는 게 여러모로 안전했기 때문이다. 정작 그 가면 속에 불편하게 일그러져 가는 내 진짜 얼굴은 무시한 채 말이다.
실제로 난 내 인생의 대부분을 나의 진짜 얼굴을 매몰차게 무시하며 살아왔다. 여전히 너무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보이는 이미지, 사회적 평가와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온 탓일 것이다.
그리고 최근 정작 더 중요한 사실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놀랍게도 지금껏 내가 쓴 완벽한 가면 뒤에 내 본 얼굴을 일그러뜨리게 놔두는 것이 나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난 내가 슬프거나 우울할 때 지금껏 내 지금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그것을 가슴 깊이 수용한 적이 없었다.
기왕이면 지옥보다 천국을 경험하는 나날이 많으면야 좋겠지만, 기분이 바닥을 칠 때조차도 난 내 감정을 존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쓴 가면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도 말이다.
지금의 난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난 지금 이 상태로도 충분히 완전한 사람이야’
이렇게 난 그동안 거짓 가면 속에 숨겨놓은 내 진짜 얼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거짓 가면을 벗어가고 있다.
휴먼 디자인에서 감정 파동에 대해 주는 교훈은 이것이다
'감정 파동에 원인은 없다. 오직 화학적 과정일 뿐이다' '감정 파동에 이유를 찾으려 하지 마라 ' '그것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수용해라'
특히 감정파동이 매우 급격히 떨어져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으면 홀로 있는 시간을 갖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내 경우엔 회사나 집에서 주변 사람들이나 상황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을 땐, 일부러 사람들과 있는 자리를 떠나 혼자 있는 시간을 갖는다.
혼자 걷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아이쇼핑을 하거나, 찬 바람을 쐬고 나면 기분이 전환된다. 기분을 전환하고 난 뒤의 느낌은 확연히 그 전과 다르다. 상황에 대한 느낌이 달라지고. 상대에 대해 갖었던 갖가지 감정 등도 조금은 사그라든다. 그럴 때면 죽일 듯이 달려들고 싶었던 일들조차도 ‘다 별것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전에는 이 단순한 걸 하지 못해서 감정적으로 힘든 상황들이 많았던 것 같다.
확실히 그동안은 너무도 강력했던 감정적 순간에 매몰되어 살아온 듯하다. 그 순간 그것이 삶의 모든 것인 양 그 순간에 쏟은 에너지들이 어마어마했음을 뒤를 돌아보니 인식이 된다. 최근에는 일상에서 감정적으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발생 가능한 많은 문제들이 사전에 예방되고 있음을 느낀다. 확실히 후회할 일도 줄어드는 것 같다
감정을 통제하고 다루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일상에서는 두 가지 솔루션 만으로도 일상적 수준의 감정적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듯하다.
감정에 이유를 찾지 않기, 그리고 홀로 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