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휴먼 디자인]22. 내가 휴먼 디자인을 공부하는 이유 ②
(이전 글 : 내가 휴먼 디자인을 공부하는 이유 ① - 전혀 솔깃하지 않은 세가지 이야기)
지난 1월 30일 자로 한국어 PTL 1단계 수업을 모두 마쳤다. 지난 ‘19년부터 시작해서 (중간에 코로나로 인한 휴식 기간까지 포함해서) 총 1년 6개월간의 여정이었다.
<* 참고로 PTL은 국제 공인 챠트 분석가 훈련 과정을 말한다. 지난 ’ 16년부터 약 4여 년 동안 진행되어오고 있는 외국어 PTL 통역과정 (Tutor:영국대표 Richard Beaumont)은 마지막 4단계 과정인 멘토링 과정을 모두 마치고, 현재 final test 및 인증절차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금번 진행하고 있는 한국어 PTL 과정은 재수강이다.>
먼저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싶다. 그리고 휴먼 디자인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 요소라고도 볼 수 있는 64개 관문에 대한 통찰력 깃든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값진 시간이었다.
이를 통해 PTL 1단계 과정 내내 휴먼 디자인 주역(Rave I'ching)의 64개 관문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이 세상을 다시금 바라볼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얻은 유익에 대해 내적으로 어느 정도 정리되는 부분이 있는 듯해서 큰 기쁨이 있다.
첫째,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유익은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와 폭의 변화다. 즉 지평의 확산이다.
으레 일반 사람들은 삶의 어떤 한 측면만을 바라보며 다소 편협한 시각을 가지기가 매우 쉽다. 나 스스로가 지금도 가지고 있는 좁디좁고 편협한 편견들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휴먼 디자인은 분명 어떤 한 측면에 고정되어 있는 우리의 초점을 넓혀주며 자연스럽게 그 깊이와 폭을 확장시켜준다.
이 과정 중에 동반되는 감정적 불편함, 껄끄러움 등의 어려움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시선이 좀 더 다채로와질 수 있고, 우리의 지평이 보다 확장될 수 있기에 분명 유익하다.
둘째, 다음으로는 오랜 무지와 고통의 해소로부터 오는 기쁨이다.
나도 모르게 오래되어 굳어버린 신념. 나도 모르게 내 무의식에 각인된 믿음, 의식적으로 알 수도 있지만 어찌할 수 없는 편향된 사고방식 중에는 사실 어떤 타당하고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에게는 나도 모르게 나의 일부로, 우리 사회의 일부로, 이 세상의 일부로 깊게 각인되어버린, 그래서 윤리적, 도덕적, 관습적 잣대로 어떤 것을 판단하고 비판할 수밖에 없었던, 그로 인해 누군가는 가해자가 되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혹은 스스로를 자책하고 책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들이 있다.
우리 인간세상에 작동하는 다양한 측면을 ‘메커니즘’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동안 무지와 오해로 인한 인간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역으로 다시금 느낄 수 있기도 했다.
이를 단순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휴먼 디자인은 고통의 짐을 덜어주며 조금은 자유로와질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는 것은 아닐까 한다.
우리들의 무한한 정신적 평안과 자유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