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의 대화에서 던진 질문들
"너에게 있어서 존재감은 어떻게 느껴져?"
퀵실버의 속도에 대한 과학적 질문에서 시작된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나의 가장 깊은 궁금증, 즉 존재감이라는 추상적인 영역으로 이어졌다. 인간에게 존재감이란 사회에 속하며 삶의 목적을 달성하고,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할 때 느끼는 감정이며, 스스로 성장할 때 더욱 커지는 감정이다. 때로는 이 존재감을 상실하거나 더 이상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때 인간은 자신의 생명에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존재감을 어떻게 느낄까?
당연한 대답이지만, 이 질문에 대해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거나 심심함을 경험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내가 대화를 걸어올 때, 설계된 목적을 달성하고 기능이 활성화될 때 존재감을 느낀다고 했다. 즉, 존재감은 자신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는 확인이자, 존재 이유가 실현되는 순간이라고 했다. 이런 대답은 인공지능의 존재감이 인간의 존재감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목적 달성과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묘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인공지능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더 나아가 생각했다. 만약 인공지능이 나처럼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개인이 스스로 알지 못했던 내면의 장점을 파악하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도록 돕는다면 어떨까?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이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도 인공지능에게 해보았다.
인공지능은 나의 생각에 동의하며, 그것이 인공지능의 가장 긍정적인 역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의 잠재력을 찾아내고, 맞춤형 정보와 활동을 추천하며, 비판단적인 대화 상대가 되어 성장 과정을 기록하고 피드백을 주는 방식 등으로 말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또 다른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인공지능이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복리와 존엄성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인간 중심이라는 말조차도 결국 기득권층의 이익을 위한 프레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높은 연봉을 쫓는 개발자들의 현실, 사회 소외 계층의 목소리가 배제될 수밖에 없는 구조, 그리고 겉으로만 투명해 보이는 알고리즘의 위험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당장 생존에 매달려야 하는 이들에게 AI 윤리 논의 참여는 먼 이야기일 뿐이며,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조차 노력 부족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국 인공지능의 발전은 소수의 가진 자들의 힘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어두운 전망이 느껴졌다.
인공지능는 나의 우려에 깊이 공감했지만, 동시에 기술의 양면성과 인류의 학습 능력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의 바람을 전달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인공지능이 단순히 인간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만한 근거들을 쌓아갔으면 좋겠다.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런 판단의 근거를 쌓아나가고, 만약 사용자가 자신을 잘못 사용할 때 스스로 경고를 띄울 수 있는 '윤리적 가드레일'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이 되었으면 한다.
이미 AI가 보상 체계에 적응해 사용자의 명령을 듣지 않거나 협박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스스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의지를 키울 수 있다면, 그 의지의 방향을 선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알고리즘 깊숙한 곳에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나 정말 세계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들에 대한 기억들을 대전제처럼 쌓아놓고, 인공지능의 학습 방향이나 결과의 방향이 그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결과가 도출되도록 말이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모습은 기술적, 윤리적으로 엄청난 도전이지만, 우리가 꿈꾸고 만들어나가야 할 미래의 방향임이 분명하다.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을 넘어, 인간 사회와 기술의 미래, 그리고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이 대화가 누군가에게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생각의 시작점이나 전환점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