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척'만 늘어가는 빈 껍데기들의 시대
거리는 지금 거대한 세트장이 되어가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 갇혀 의식없이 멈춰있는 좀비들의 세트장 말이다. 계단을 오르다가 뜬금없이 멈춰 서서 뒷사람의 진로를 막는 아이들, 횡단보도 파란 불이 켜진 줄도 모르고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는 학생들. 그들의 눈동자는 현실이 아닌 15초짜리 영상 속을 헤매고 있다. 그 순간 그들의 뇌는 사고를 멈춘다. 오직 도파민만이 혈관을 타고 흐를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만 탓할 일이 아니다. 어른들의 뇌도 녹아내리고 있다. 나는 현장에서 일을 하며 이 기이한 '지적 퇴화'를 목격한다.
강사들에게 새로운 교안을 전달할 때의 일이다.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직접 시도해 보지도 않은 채 대뜸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거 안 되는데요?"
그들의 사전에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는 건가요?"라는 겸손의 언어가 없다. 대신 "이게 이상하다", "프로그램이 문제다"라며 대상을 탓한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거나, 자신의 무지를 도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야말로 진짜 부끄러움이다. 하지만 쇼츠에 절여진 이들은 '모름'을 인정하는 법을 잊었다.
이것은 마치 영화를 한글 자막으로 보면서, "나 영어 좀 하네"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자막이 떠먹여 주는 내용을 이해한 것이지, 영어를 할 줄 아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막상 외국인을 만나 입을 떼려 하면 한마디도 못 하는 것처럼, 숏폼으로 정보를 구경만 한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 지식인 줄 착각한다. 그렇기에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고 어려운 문제는 무조건 내가 아니라 그 대상이 문제라고 말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즉, 방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정작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해결할 줄 아는 능력은 퇴화해버린 '빈 껍데기 전문가'들의 탄생이다.
이 착각은 현실 감각을 마비시킨다. 쇼츠에서 "월 천만 원 버는 법", "브랜드 런칭해서 대박 나는 법" 같은 영상들이 쏟아지니, 너도나도 겉멋만 들어서 의류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설친다. 그 일이 얼마나 많은 땀과 디테일을 요구하는지, 화려한 결과 뒤에 얼마나 지루한 과정이 숨어있는지는 보려 하지 않는다. 그저 영상 속 주인공처럼 폼 나게 성공하는 '결과'만을 탐할 뿐이다.
과정 없는 결과는 사기이고, 사색 없는 지식은 쓰레기다. 사람들에게 점점 깊이 있는 대화는 사라지고, 1분짜리 요약 영상 같은 단편적인 주장만 난무한다.
우리는 지금 똑똑해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멍청해지고 있는 걸까.
15초의 자극에 절여져, 계단 위에서 길을 막고 선 아이나,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는 어른이나 본질은 같다. 생각하는 근육이 다 녹아버린 자리에 남은 것은, 남들이 떠먹여 준 취향과 지식을 자기 것인 양 과시하는 서글픈 '겉멋'뿐이다.
빈 껍데기들의 세상. 지금 당신의 알맹이는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