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혐오가 아니다. 서로 살기 위한 '시차 적응'이다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에게 아침 출근길 지하철, 특히 2호선과 1호선은 단순한 대중교통이 아니다. 그곳은 매일 아침 생존을 걸고 싸워야 하는 '전쟁터'다.
오전 7시 30분. 이미 객차 안은 콩나물시루처럼 꽉 차 있다. 숨 쉴 공간조차 부족해 서로의 날숨을 공유해야 하는 이 지옥철에서, 젊은 직장인들은 오직 "지각하면 안 된다"는 일념 하나로 버틴다. 그런데 이 비좁은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오는 거대한 그림자가 있다. 바로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고, 자기 몸집만한 배낭을 멘 '등산 가방 부대'다.
그들의 등장은 그 자체로 공포다. 만원 전철에서 그들이 몸을 한 번 돌릴 때마다, 거대한 등산 가방은 흉기가 되어 주변 사람들의 명치를 가격하고 안경을 날려버린다. 하지만 사과는 없다. 오히려 "젊은 게 좀 비키지 않고!"라며 호통이 날아온다.
더 견디기 힘든 건 '무언의 압박'이다. 노약자석이 만석이라 일반석에 앉아 겨우 쪽잠을 청하려는 젊은 직장인 앞에, 굳이 다가와서는 기이한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큰 한숨을 쉬거나, "에잉, 요즘 젊은것들은..." 하며 혀를 찬다. 심지어 무릎으로 툭툭 치며 눈치를 주는 경우도 다반사다.
나는 묻고 싶다. 그 자리에 앉은 청년의 하루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새벽별을 보고 나와, 상사의 폭언과 과중한 업무를 견디고, 내일의 카드 값을 걱정하며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집에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겉보기에만 젊을 뿐, 그들의 속은 이미 만성 피로와 스트레스로 골병이 들어있다. 그런 그들에게 "젊은이는 서서 가도 된다"는 논리는 폭력이다. 세금을 내고 나라를 지탱하기 위해 일터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죄인처럼 눈치를 봐야 하는 이 기이한 풍경. 이것은 '경로사상'이 아니라 '염치없음'에 가깝다.
이것은 단순한 '느낌'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수치로 증명할 수 있다. 실제로 집 앞 지하철역 출구 한 곳을 정해, 직접 통행량을 조사해 본 적이 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출근 시간인 오전 7시부터 9시까지는 시간당 약 1,500명에 달하는 인파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9시가 넘어가는 순간, 거짓말처럼 통행량은 200~300명대로 뚝 떨어졌다. 무려 5배 이상의 차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전 9시까지만 버티면, 도로는 한산해지고 지하철은 쾌적해진다는 뜻이다. 이 명확한 '병목 구간'에 굳이 등산 가방을 멘 어르신들이 합류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이 데이터를 근거로, 고령화 사회의 난제를 해결할 '빅딜'을 제안하고 싶다. 핵심은 간단하다.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어르신에게 대중교통 무료 이용권을 드리자. 단, 이용 시간은 제한한다."
현재도 면허 자진 반납 제도가 있지만, 10만 원짜리 교통카드 한 번 주고 끝이니 반납률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 더 파격적인 혜택이 필요하다. 면허를 반납하면 평생 지하철과 버스를 무료로 타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골든 룰'이 있다. 무료 승차는 출퇴근 전쟁 시간을 제외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가능하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시차 적응'이다. 치열하게 일터로 향하는 젊은 세대의 '생존 시간(러시아워)'과, 여가를 즐기는 노인 세대의 '활동 시간'을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것이다. 통계가 말해주듯, 9시만 넘어도 지하철은 텅 빈다. 그때 이동하시면 어르신들도 편하게 앉아서 가실 수 있고, 젊은이들은 출근길 지옥에서 해방될 수 있다.
권리에는 책임이 따르고, 배려에는 여유가 필요한 법이다. 젊은이들이 출근길에서 짓눌리지 않고 여유를 가져야, 노약자석을 양보할 마음의 공간도 생기는 것이다. 서로의 발을 밟고 서 있는 지옥철 안에서 예의와 배려를 강요하는 건 그저 또 다른 갑질일 뿐이다.
복지는 퍼주기식 시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시스템'이어야 한다. 면허를 내려놓고 안전한 대중교통으로 갈아타시라. 대신, 치열하게 일하러 가는 젊은이들의 길은 조금만 비켜주시라.
서로의 시간을 침범하지 않고 각자의 속도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초고령화 사회를 앞둔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