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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샤 Feb 19. 2018

금융산업의 게임체인저, PSD2

핀테크 살리기 #3

기억하세요! PSD2


한국인에게 인공지능은 낯설지 않습니다. 기술력 자체는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에 못 미치겠지만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민감도나 인지도는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일 거예요. 아마도 알파고와 인간과의 바둑 대결이 다른 곳 아닌 한국에서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블록체인의 원천 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인데 '가즈아~'로 상징되는 암호화폐 열풍을 통한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이미 글로벌 넘버원을 차지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전 세계 금융계를 들썩거리게 할 엄청난 화두인데도 유난히 한국에선 잠잠한 아이템이 하나 있습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유로존의 새로운 금융정책 PSD2!


Payment Service Directive 2


지불 및 결제 서비스에 대한(payment service)

지침(directive) 

두 번째 버전(2) 이라는 뜻이죠.

우리나라의 금융실명제처럼, 앞으로 유로존에서는 어떠한 금융기관이건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법적 제도인데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실로 예사롭지 않습니다.


핀테크를 이끄는 대영제국의 통찰


PSD2는 2009년 영국에서 시행된 PSD의 차세대 버전입니다. 금융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까, 송금과 결제는 어떻게 처리할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금융거래 당사자인 고객과 은행, 그리고 핀테크 기업들의 권리와 의무를 설정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던 초기 버전에 이어 금번에 업그레이드된 개정안은,


# 유로존 전체에 대한 광범위한 확산을 염두에 두고

# 고객정보 보호 및 보안 프로세스를 보다 명확히 규정하며

# 특히 비은행 기업들(aka 핀테크)의 '금융시장 진입을 촉진'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지요.  


여태까지 금융 규제라 하면 은행이나 증권사 들을 대상으로 한 명령과 지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무엇이 되었건 일단 '금융기관'이라는 테두리 안에 이루어지는 그들만의 리그였지요.

그런데 PSD2는 다릅니다.

명실공히 금융산업의 글로벌 메카이자 허브인 영국이 주도하여 만든 이 제도의 철학과 배경을 들여다보면,


# 금융혁신을 은행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다

# 금융정보는 빅데이터의 원동력인데 발전이 더디다  

# 금융 수수료가 너무 비싸 진입 장벽이 크다

# 고객이 원하면 거래 정보 몽땅 내놔라

# 디지털 혁명이 시작됐고 이제 새로운 '선수'가 필요하다


결론은 핀테크 길터주기입니다.

금융기관들이 꽁꽁 움켜쥐고 있던 '돈 보내고 돈 받기, 그리고 그 거래의 기록'을 외부의 핀테크 기업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끔 강제로 문을 열어 준거죠.

이른바 오픈뱅킹 시대의 개막을 선언한 겁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블록체인, IoT 등 디지털 혁명이 소환하고 있는 미래의 금융산업을 한 수 앞서 통찰하고, 그 미래를 주도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설계하고 준비한 제도가 바로 PSD2입니다.

작은 섬나라 영국이 가진 대영제국이라는 타이틀이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겠지요.


눈 앞에 다가온 게임 체인저


이 제도를 통해 우리는 다음 2가지의 금융 플레이어를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 PISP (Payment Initiation Service Provider) 지불 대행 서비스 제공회사

은행이 제공하는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뱅킹을 사용하지 않고도 별도의 앱을 통해 돈을 송금하거나 물품 대금을 청구하거나 온라인 쇼핑 결제를 가능하도록 해주는 회사로서, 우리나라의 토스TOSS나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페이코 등을 떠올리시면 편합니다. 공동구매를 해 보신 파워블로거 분들은 많이 알고 계실 블로그페이도 이 중의 하나입니다.


# AISP (Account Information Service Provider) 계좌 정보 서비스 제공회사

모든 은행 계좌, 카드 대금, 주식 매매 등의 금융 현황을 하나의 앱에서 통합하여 보여주거나, 거래 패턴과 속성을 분석하여 맞춤형 상품 제안 등 부가 정보를 창출해 주는 회사로서, 우리나라에서는 브로콜리가 선두주자인데 최근 KEB하나은행과 SK가 합작 투자하여 설립한 FINQ에서도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요.


아니, 영국과 유럽에서 이제 막 시작한 제도인데 이렇게 많은 사업자가 한국에 이미 존재하냐구요?

맞습니다.

사실 비대해진 은행의 역할을 축소하여 금융 업무 그 자체를 개방하고 확대하려는 PSD2의 아이디어는 이미 인터넷이 등장한 1990년대 초반부터 쭉 있어왔던 해묵은 아이템입니다. 1994년에 이미 빌 게이츠는 'Banking is necessary, Banks are not.'이라고 일갈하기도 했지요.

이 해묵은 아이템들은 수많은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기존의 규제, 기존의 관행, 기존의 부조리와 치열한 싸움을 겪으면서 피땀 어린 시행착오를 통해 간신히 명맥을 이어온 것입니다.


최근 전 국민의 화두가 된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거래소만 하더라도 관련 법률과 규제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엄청난 '금융 거래'가 이미 일어나 버렸지요.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회의니 토론회니 기자회견이니 잔뜩 해댔지만 정작 제대로 된 규제는 단 하나도 세팅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정치적 안티들만 양산해 내는 아마츄어리즘을 여실히 보여줬지요.

한국의 핀테크 선두주자들이 뒷다리만 줄기차게 잡아채는 낡은 법령과 규제의 태클을 용기 있게 뚫으며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가까스로 선보이는 동안, 영국 정부와 유로존은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 줄 법적 장치와 규제를 정교하게 설계하며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있었던 겁니다.  


영국은 되고 한국은 안 되는 이유


PSD2는 오픈뱅킹 패러다임을 여는 금융의 권리장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권력화 된 금융기관의 독점과 집중을 깨트리고 소비자가 주인이 되는 새로운 금융 시대를 시작하는 또 하나의 르네상스 혁명이지요.

그런데 아마 한국의 금융 법령과 규제를 주관하는 금융위원회에서는 이런 말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 무슨 소리? 세계 최초의 은행권 공동 오픈 플랫폼을 추진한 건 바로 우리라구!

# PSD2에 나오는 개념 모두 그 플랫폼에 들어 있단 말이야!

#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 못 들어 봤어?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시라~


절반은 맞습니다.

금융위원회가 주도하고 금융결제원이 개발을 맡아 추진 중인 은행권 공동 오픈 플랫폼은, 핀테크 서비스 출시를 위해 은행 모두와 개별적으로 협약을 맺어야 하는 번거로움과 전산 표준이 다른 복수 은행과의 호환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현재 16개 은행이 참여하고 있으니 서비스의 커버리지도 충분하다고 볼 수 있고 금융의 핵심 기능인 인증, 계좌 조회, 송금과 이체를 지원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오픈 플랫폼 제도가 영국의 PSD2처럼 파워풀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아마 진정성의 차이일 겁니다.

PSD2는 혁신적인 디지털 금융 서비스로의 진화를 위해 새로운 선수 즉 핀테크 기업을 지원한다는 목적을 강조하고, 금융 소비자 개개인의 권리를 증대하고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며, 더욱 낮은 금융 수수료를 제공토록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반면 한국의 오픈 플랫폼 정책은 '우리도 한다'며 광 파는 데에만 집중했을 뿐, 상식적인 수수료 정책 등을 통해 금융 소비자와 핀테크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진정성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냐구요?

은행의 기능을 외부에 나누어 주어야 하는 특별한 사업을 하는 마당에 은행원만 모아 놓고 알아서 만들라고 방치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16개 은행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들었다고 하는 홍보 문구의 이면에는, '은행끼리' 꿍짝 해서 만들었다고 하는 자기 고백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금융위원회가 시킨 일이니 마지못해 하긴 해야겠는데... 은행에 도움이 될지 안될지 피아 구분도 어렵고... 당장은 돈 안 되는 사업이라 윗사람들의 관심도 없으니... 그냥 아무나 대충 보내서 땜방하며 버티다가... 수수료 잔뜩 얹어 내놓으면 제풀에 떨어지겠지 하며 만들었을 겁니다. 이러니 완성도는 떨어지고, 수수료는 너무 비싸고, 정작 사용하는 핀테크 기업은 거의 없는...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는 것이죠.

송금 1건당 500원, 잔액조회 1건당 10원씩 부담하며 돈 벌 수 있는 핀테크 비즈모델이 과연 생길 수 있을까요?


핀테크 기업에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호언장담으로 시작한 오픈 플랫폼.

우리나라는 선견지명은 부족해도 임기응변과 속전속결로는 세계 최고의 퍼포먼스를 낸 경험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K-PSD2'의 기치를 다시 세우고, 국민들의 행복한 금융생활을 도와주는 진정한 오픈 플랫폼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외람되지만, 금융위원회 관계자 분들께 납세자의 한 사람으로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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