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이 소환하는 금융의 미래 #1
오버슈팅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암호화폐의 폭등을 다루는 자극적인 보도들로 인해 너무 빨리 증폭된 사회적 관심은 투기, 광기, 질투의 단계를 불과 몇 달 만에 겪어 내곤 이제는 분노와 혐오의 감정까지 섞여... 그야말로 복마전이 된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암호화폐 가격이 더 오를지 아님 아예 망해 버릴지, 어떤 코인이 살고 죽을지는 알지도 못 하고 별 관심도 없습니다.
그런데 블록체인이라는 세계관에 내재된 가슴 뭉클한 미래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RSM 작가의 '장난감' 발언이 진리인 듯 회자되는 현실을 보면...실로 어이가 없어집니다.
RSM 작가의 사회적 브랜드와 팬덤 그리고 말빨에 밀려 이 분야의 진정한 선구자들은 속으로만 부글부글 대고 있지만, 과연 블록체인 그리고 비트코인이 그렇게 너덜너덜한 쓰레기에 불과한 걸까요?
위키피디아에서는 블록체인을 다음처럼 설명합니다.
관리 대상 데이터를, 블록이라고 하는 소규모 데이터들이 P2P 방식을 기반으로 생성된 체인 형태의 연결고리 기반 분산 데이터 저장환경에 저장하여, 누구도 임의로 수정할 수 없고 누구나 변경의 결과를 열람할 수 있는, 분산 컴퓨팅 기술 기반의 데이터 위변조 방지 기술이다.
아, 진짜 정내미 떨어지게 밋밋하네요.
쳐다보기도 싫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반면 초초 하이테크의 전문가들만 사용하던 '인터넷이라는 장난감?'을 비로소 보통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준, 세계 최초의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의 창시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오 세상에, 바로 이거야.
인터넷이 갈구해 왔지만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었던 분산형 신뢰 네트워크가 우리 앞에 등장했어!
마치 보물섬을 발견한 사람의 흥분과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합니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었던 분산형 신뢰 네트워크
인터넷을 대중화시킨 히어로의 내공이 담긴, 아마도 블록체인의 개념을 가장 간결하고 정확하게 설명한 문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움 그 자체를 사랑합니다. 사회적으로 좋건 나쁘건 새로운 무언가는 지루함을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강하게 자극하여 호기심이라는 기름덩이에 불을 지릅니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었던' 이라는 표현은 호기심의 다른 이름입니다.
특히 인터넷, 혹은 네트워킹이라는 기술을 통해 세상을 바꿔 왔고 더욱 바꾸려 하는 선구자들에게는 하나의 종교처럼 강렬한 흡인력을 줍니다.
스티브 잡스라는 캐릭터를 분석하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만 그가 극단의 호기심을 보유한 사람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생전에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간의 두뇌는 세상을 향한 고정된 시각에 정착합니다. 항상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겁니다. 저는 항상 느껴왔어요. 죽음은 생명을 위한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분명 생명도 처음에는 죽음 없이 진화했을 겁니다. 그러다가 발견한 거죠. 죽음 없인 그것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왜냐하면 젊음이 설 공간이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 50년 전 세상이 어땠는지 모르는 자들, 20년 전 세상이 어땠는지 모르는 자들, 현시대를 있는 그대로 아무런 선입견 없이 볼 수 있고 그것을 토대로 어떠한 미래가 가능한지 보고 꿈꿀 수 있는 자들을 위한 공간 말입니다. 그들은 지난 30년간의 업적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불만스러워합니다. 현시대가 자신들의 이상에 부응하지 않으니까요. 죽음이 없다면 진보는 굉장히 적을 겁니다. 조직에게나 사람에게나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중 하나는 특정 세계관에 정착하고 그것에 만족하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은 바뀌거든요. 새로운 가능성들은 항상 일어나기 마련인데, 정착된 이들은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블록체인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기술이고 이러한 새로움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블록체인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지금에 이른 겁니다.
새로움의 상징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었다면
그는 아마도 '아이코인'을 만들었으리라 100% 확신합니다!
'신뢰 네트워크'라는 문장도 만만치 않은 무게를 가집니다.
위대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있지요.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부자는 물건을 팔지 않고 신뢰를 판다.
신용은 사업가의 목숨이다.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번 신뢰를 얻으면 인간관계는 물론 비즈니스에 있어 승승장구의 길을 걷게 됩니다. 특히 돈을 다루는 금융 분야에서 신뢰란 그 자체가 존재의 기반이지요.
신뢰로 먹고사는 대표적인 산업이 바로 은행입니다. 내 돈을 빼어 먹지 않고 안전하게 보관해 주겠지라는 신뢰가 없으면 은행에 돈을 맡기는 사람은 한 명도 없겠죠. 부동산 계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전 재산일 수도 있는 큰 금액이 오가는 부동산 거래를,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들의 개인적 신뢰(aka P2P)에만 맡겨 놓을 수 없기 때문에 국가라는 기관이 나서서 등기라는 제도를 만들고 법이라는 장치로 탄탄하게 보장해 주고 있는 거죠.
블록체인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신뢰 시스템'을 제시한 겁니다. 그 배경 기술이 무엇이 되었건 만약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만 된다면 엄청난 비즈니스적 가치를 갖게 됩니다. 블록체인 산업에 사람과 기업이 몰리고 있는 이유는 결국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산'이라는 속성은 블록체인에 내재된 저항적 세계관이 응축된 핵심 컨셉입니다. 나카모토 사토시가 만든 비트코인을 처음 접한 그룹 중에 사이퍼펑크(Cypherpunk) 커뮤니티가 있었다 합니다. 사이퍼펑크는 인터넷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 정부의 모니터링과 검열 그리고 기업들의 정보 제어에 반감을 느껴, 사생활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강력한 암호화 기술을 개발하려는 일종의 해커 연합체입니다.
개인의 자유에 극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정부나 기관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며, 대기업의 탐욕스러운 독점을 싫어하는 그들의 욕망은 일반 사람 누구나 갖고 있을 원초적 본능을 대변하지만,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총칼 대신 해킹 기술로 체제에 도전하는 아나키스트와 다름없지요.
전 세계 정부나 기업의 비윤리적 행위가 담긴 비밀문서를 폭로했던 위키리크스의 줄리언 어산지가 대표적 멤버였는데 그도 역시 감방 신세를 졌습니다(aka 지못미).
비트코인이 추구하는 '익명의 디지털 화폐'는 사이퍼펑크가 다루었던 주요 주제 중 하나였다 합니다.
블록체인 특히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는 이 부분에서 이른바 '중앙'의 강한 견제에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견고하게 쌓아 올려진 세상의 지배 체제,
그것이 화폐(비트코인)이건, 계약(이더리움)이건, 펀딩(ICO)이건,
기존의 시스템을 부정하고 금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시도는 중앙과 기관의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비정상적 일탈'인 것이지요.
블록체인은 결국 비트코인으로부터 출발했고, 실존 인물이건 아니건 사토시의 생각과 사상을 빼놓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나카모토 사토시 中本哲史
그의 이름 속에는
중앙...철학...기록 등의 키워드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그가 작성한 비트코인 백서에는,
Online payment without going through a financial institution
비트코인은 금융기관 없이도 작동하는 온라인 결제 시스템이라 명시했습니다.
금융기관 없이 작동하는 개인 간 결제 시스템,
이것이 바로 비트코인의 본질입니다.
이 본질을 구현하기 위해 P2P, 채굴, 암호화, 작업 증명, 다수결 등의 테크닉을 사용한 것일 뿐,
그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것은 '중앙 집권으로부터의 탈출' 이었을지 모릅니다.
비트코인의 개발 시점이 공교롭게 리먼사태라는 글로벌 금융 위기와 맞물려 기존 화폐 시스템에 대한 반감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의 백서 어디에서도 '현행 화폐 제도의 대체' 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익명이 보장되는 개인 간의 자유로운 결제(payment)에 집중한 천재의 집념만이 녹아 있을 뿐.
오래전 빌 게이츠의 윈도 OS가 컴퓨터 생태계를 완전히 장악하여 오만한 독점을 누리고 있을 때, 리눅스라는 오픈소스 프로그램이 등장하여 MS의 독점을 저지했습니다.
애플이 아이폰 IOS로 스마트폰의 지배를 꿈꾸고 있을 때, 안드로이드가 나타나 그들의 권력을 나누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안드로이드 운영체계가 리눅스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지배와 해방을 반복해 왔던 인류 역사는 시대가 바뀌어도 어딘가 묘하게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자~ 이제부터는 완전히 주관식입니다.
비트코인이 화폐이건 아니건, 자산이건 아니건, 가치가 있건 없건 비트코인은 이미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전파하는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비트코인을 기술적 호기심으로 바라보건,
국제 간 송금과 결제의 대안으로 바라보건,
금과 같은 디플레 자산으로 이해하건,
아니면 정말 디지털 기축통화로 존중하건
그건 각각의 사람들이 '선택한 자유' 입니다.
하나하나의 사람들은 선호하는 것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릅니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완장을 싫어하고 간섭을 싫어하고 속박을 싫어하고 특권도 싫어하는 기질이 우월한, 자유와 평등을 사랑하는 순수한 세계관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치열하고 비범합니다.
젊은 시절의 RSM 작가가 그러했을 것처럼...
스티브 잡스가 기존의 기술들을 결합하여 스마트폰이라는 혁명적 기계를 구상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몽상가라 놀려댔지만 그는 결국 세상을 바꿨습니다.
현재 상태의 블록체인 특히 비트코인이 가진 한계와 문제점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처리 속도가 늦다,
수수료가 비싸진다,
에너지 소모가 많다,
소수에게 집중되었다...
그럴 겁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인간이 만든 모든 상품과 서비스 중 처음부터 제대로 완벽했던 것이 단 하나라도 있었던가요?
바둑의 전설 조훈현 님은 '고수의 생각법'이라는 책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인생의 풀잇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모든 프로 기사들은 늘 구사일생의 삶을 살아가는 문제 해결의 고수들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세로 세상을 바라본다. 아주 어릴 때부터 수많은 난제들에 부딪치며 살아왔고, 결국에는 그들이 해결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스스로 풀지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꼭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그 문제를 풀고야 만다. 그러니 세상사를 바둑판이라고 생각한다면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 문제는 반드시 해결된다. 해결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근성만 있으면 된다.
먹물들은 이미 발생하고 있는 현상들을 자꾸만 분석하고 해석하려 들지만, 세상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도 많은 법입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무시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블록체인이 철없는 기술자들의 장난감이라면 그냥 그 장난감 가지고 놀게 내버려 두면 됩니다. 레고나 닌텐도나 스타크래프트나 배틀그라운드 등 장난감 만들어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자알 먹고 자알 삽니다. 분노와 비난과 무시와 폄훼의 대상이 될 만큼 어리숙하거나 멍청한 사람들이 아닌 겁니다.
근성 넘치는 장난감 천재들이 언젠가는 그들의 사상과 철학을 보란 듯이 구현해 내고야 말 겁니다.
RSM 작가가 한국 사회를 보다 좋은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지난 시간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불과 2018년 1월 18일 이전(뭔가 라임도 딱 들어맞는 느낌...)만 하더라도 그의 진보적 생각과 적극적 행동을 지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TV 채널의 토론회는 물론, 청취율 1위를 기록한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에까지 '자청'해 나와 휘갈기는 언어의 폭력을 듣고 있노라니, 이젠 그동안의 모든 성과가 단지 오만한 지식인의 잘난 체, 새로운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정착된 꼰대의 상징'으로 보입니다.
요즘 무한도전의 토토가 시리즈로 H.O.T. 가 나오더군요.
그들의 노래 중에 자꾸 귀에 박히는 가사가 있어 적어 봅니다.
잘 모르겠지만,
이건 절대 RSM 작가 때문에 떠오르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아 니가 니가 니가 뭔데 도대체 나를 때려
왜 그래 니가 뭔데
너는 너는 끝내 나의 적이 됐고
이제 나는 너를 포기했어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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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