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샤 Feb 18. 2018

금융위 오픈뱅킹 플랫폼의 허상

핀테크 살리기 #2

세계 최초의 은행권 공동 오픈 플랫폼? 


나라에서 하는 사업들은 항상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법입니다.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불편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국가의 정책이겠지요. 그런데 금융분야는 유난히 욕을 많이 먹습니다. 돈과 관련된 이해관계가 오가서인지는 몰라도 어떠한 정책을 내놓건 칭찬받는 경우는 드뭅니다.


욕먹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 걸까요? 핀테크라는 화두에 신성장동력, 창조, 혁신 등의 아름다운 말들을 몽땅 갖다 붙이며 나라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하나 있습니다. 금융위원회가 광을 팔고 금융결제원이 총대 멘 다음 은행들이 들러리  '오픈뱅킹 플랫폼'이 그것이지요. 

은행 밖의 핀테크 사업자가 은행의 뱅킹 업무, 예를 들면 내가 거래하고 있는 모든 은행의 거래내역을 한꺼번에 조회하거나 하나의 앱에서 모두 송금할 수 있도록 강제로 '은행 문'을 열어주는(open) 제도입니다. 지긋지긋한 공인인증서 없이도, 별의별 보안 프로그램 까느라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허접하기 그지없는 은행 앱 쓰지 않아도 자유롭게 돈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토스나 카카오페이가 이미 비슷한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요, 지금까지는 전국의 모든 은행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개별적으로 신청하고 승인받고 계약을 해야만 , 오픈뱅킹 플랫폼을 이용하면 금융결제원 딱 한 번만 신청하면 원샷으로 되는 겁니다. '동'이라는 말 붙은 이유지요. 그런데 세계 최초라고 자기 자랑은 잔뜩 하지만 막상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한국에서 돈을 주고받으려면


살다 보면 예금도 들고 대출도 받고 펀드도 가입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뱅킹이란 그저 돈 보내고 돈 받는 겁니다. 내 계좌에서 돈 빼서 다른 계좌로 보내는 것, 그게 다이지요. 그런데 한국에 은행이 딱 하나밖에 없다면 그냥 그 은행 전자장부에 기 두고 척척 처리하면  되겠지만 우리나라는 시중은행, 지방은행, 특수은행, 우체국 등을 합쳐 20개가 넘는 은행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은행'간'의 거래를 이어 줄 중개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걸 해주는 곳이 바로 '금융결제원'인데 금융공동망이라는 전산시스템을 통해 서로 다른 은행 간의 송금을 처리해 주고 있지요.


이 금융공동망을 이용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 돈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은행 하나만 딱 정해서 월급통장을 몽땅 몰아주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그런데 금융결제원은 나라가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들끼리 모여서 만든 사단법인입니다. 수십 년 전 조금씩 지분을 투자해 시스템을 만든 다음 매년 회비를 내며 이 거대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요. 

따라서 금융결제원은 은행들의 입김과 이해관계에 전적으로 종속됩니다. 대형은행과 소형은행 간의 소소한 갈등도 있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한 패입니다. 

끼리끼리. 

어떠한 경우에도 은행들 스스로의 이익을 반하는 '착한' 서비스를 만들어 내진 않겠지요.


삥 뜯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문제는 이 공동 플랫폼을 이용하는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는 것입니다. 토스는 은행과의 개별 계약을 통해서 송금 1건당 100~700원 정도의 수수료를 은행에 낸다고 하는데요, 평균적으로 300~400원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명색이 금융위가 주도하는 공적 사업인 데다가 마치 핀테크 스타트업들에게 새로운 비전과 기회를 주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이 서비스의 이용수수료가 무려... 송금 1건당 500원 이랍니다.


토스가 한 달에 1800만 건의 송금거래가 있다고 하니, 새로운 스타트업이 등장해서 한 달에 1000만 건 정도를 처리하면 대성공일 겁니다. 근데 뒤로는 은행에게 무려  50억 원의 수수료를 뜯기게 되는 거죠. 1년이면 600억 원... 

이 수수료 체계는 은행들이 협의해서 만든 건데 자기들 스스로도 꺼림칙해서인지 홈페이지에 공지도 안 하고 Not Open 상태로 쉬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누군가에게 송금을 보낼 때 은행에서 발생하는 처리 원가가 500원이나 되는 걸까요? 내 핸드폰에서 친구의 핸드폰으로 사랑해라는 '전자 메시지'를 톡으로 보내는 것과, 내 계좌에서 친구의 계좌로 10만 원이라는 '전자 화폐'를 보내는 비용이 그렇게도 차이가 많이 날까요?


금융결제원의 오픈뱅킹 플랫폼은 은행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은행 밖의 새로운 사업자를 위해 만든 것입니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제3사업자(3rd party)라고 부르는데, 토스를 비롯해서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페이코, 알리페이 등 이미 많이 볼 수 있지요. 

그런데 토스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어마어마한 대기업들입니다. 이들은 은행에 대해 어느 정도의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제휴 비즈니스와 연계해서 맘에 드는 은행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토스와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카카오나 네이버는 송금 1건당 은행에 지불하는 수수료를 100원 수준으로 맞췄다고 하지요.


그럼 대충 이런 원가 체계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핀테크 스타트업 500원 > 토스 300원 > 카카오나 네이버 100원 > 은행 몇 원.....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윈가 체계를 강요한다면, 결국 스타트업들은 그냥 "망해라"는 이야기입니다. 

국가기관인 금융위원회는 은행들의 이런 불공정한 담합에는 눈 감은 채, 4차산업혁명의 주역이니, 소비자 중심의 미래 금융이니 하며 핀테크 스타트업 들을 펌핑(aka 농락?)하고 있는 거지요. 

핀테크 분야에서 제2의 네이버와 카카오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건 몽상입니다.


자비(mercy)는 넉넉해야 빛이 난다


작년에 4대 은행에서 벌어들인 순이익이 10조 원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IMF를 겪은 우리는 은행이 망했을 때의 사회적 혼란을 겪어봤기 때문에 은행들이 경영을 잘해 금고를 넉넉히 채우고 있으면 든든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돈은 다 어떻게 번 것일까요? 예금이자는 덜 주고, 대출이자는 더 받고, 여기저기에서 수수료 받아 번 돈 아닌가요? 이렇게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은행들이, 대한민국 금융의 미래를 창조해 나갈 조그마한 스타트업들에게 과도한 진입장벽을 쌓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요? 가진 건 사람밖에 없는 조그마한 땅덩어리 안에서 아등바등 우리끼리 치고받다가 정작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가 진짜배기 핀테크를 만들어 진격해 온다면 그땐 어떻게 할 건가요?


오픈뱅킹 플랫폼을 활용하려는 핀테크 기업들은 은행산업의 적이 아닙니다. 은행원들의 DNA에는 절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유통/제조/IT의 숨겨진 노하우를 금융과 융합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은행의 입장에서는 받으나 안 받으나 대세에 지장 없는 잡수수료가 핀테크 스타트업들에겐 할 건가 말 건가, 될 건가 안 될 건가의 사업적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됩니다. 

탐욕이 지나치면 파멸로 가고 자비가 넉넉하면 그 빛이 존경과 애정으로 되돌아옵니다. 

한국의 금융소비자들이 진정한 핀테크를 경험할 수 있도록 EU의 'PSD2'처럼 상식적인 통행를 만들어 주 기대해 봅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TOSS는 망한다구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