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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샤 Feb 28. 2018

K뱅크를 위한 변명

금융업의 민낯과 속살 #1

크뱅이 뭐야?

나름 요란한 등장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제1호 인터넷 전문은행!

젊은 친구들은 기억도 못할 평화은행 이후 무려 24년만에 처음으로 은행업 면허를 새로 따낸 은행이었습니다. '상식이 이긴다'는 상식적인 슬로건으로 오픈 첫날 2만명의 신규 고객을 유치하며 화려하게 등장했지요. 특히 모바일 신용대출의 인기가 너무 좋아서 급기야는 취급을 중단하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요즘 K뱅크 얘기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만나기 어렵습니다.

크뱅 vs 카뱅.

딱 한글자 차이인데,

모두들 카카오뱅크만을 이야기할 뿐 K뱅크의 존재감은 보이질 않네요.


빛바랜 용기

금융 특히 은행의 디지털 뱅킹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공인인증서는 정말 난공불락이었습니다. 특히 모바일은 극상의 편리함과 단순함이 생명인데, 이 놈의 공인인증서는 비밀번호 체계도 복잡하고 유효기간 끝나면 갱신도 해야 되며 특히 최초 발급시에는 반드시 오프라인 영업점에 방문해야 한다는 치명적 불편함이 있었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딱 한가지. 

사고 터져도 은행은 면책이 되기 때문입니다.

공인인증서는 이미 2015년에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을 통해 의무사용이 폐기됐지만 아직도 그 법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금융회사 또는 전자금융업자는 사고 발생시 이용자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 미리 체결한 약정에 의해 그 책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자가 부담하게 할 수 있다

우리가 금융 거래 할 때 이런 저런 약관이나 동의서에 도장 팡팡 찍어 주는데 그 안에 바로 위와 같은 '약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증서 비밀번호를 유출하는 것은 이용자의 중대한 과실이라고 충분히 볼 수 있는 경우이기 때문에, 은행들은 해킹과 피싱에 대한 완벽한 방어시스템을 갖추려는 노력은 등한시하고 무조건 공인인증서를 통해 금융거래를 하도록 유도한 겁니다. 


K뱅크는 공인인증서를 완전히 없애고 송금과 이체는 물론 소액 신용대출까지 스마트폰 하나만으로 해결해 주는 '역사적 결단'을 내린 최초의 은행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차별성이 없다면 기존의 은행들과 맞서 싸울 수 없었겠지만, K뱅크의 선빵이 없었다면 카카오뱅크 역시도 여전히 공인인증서가 난무하는 UI/UX에 갇혀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뭘 해도 카뱅한테 밀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진짜배기 뱅킹 서비스를 선 보인 K뱅크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미래가 불안해 보이는 건 왜일까요?


상품의 혜택이나 포트폴리오를 놓고 보면 K뱅크는 분명 카뱅보다 훨씬 좋습니다. 

예금 금리는 높고

대출 금리는 싸고

상품 종류도 많고...

하지만 가입자수는 카카오뱅크의 10분의 1 수준.

사람들의 엄지 검지 손가락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카카오팀의 압도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카카오톡이 가진 플랫폼 효과를 최대한 감안해도 

그 성적이 너무나 초라하네요.

 

혜택도 좋고 상품도 많지만 사람들은 카뱅을 더 선호합니다.

K뱅크가 무슨 상품을 만들건 무슨 서비스를 내 놓건

카뱅이 비슷하게 카피해서 손가락의 마법만 살~짝 걸어 두면

사람들은 몽땅 그 쪽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은행들과의 영토 전쟁은 언감 생심,

카뱅과의 소소한 각개 전투에서도

연전연패의 악순환이 자명해 보이는 겁니다.


그러면 K뱅크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렇게 근근히 간판만 걸어 놓으면 되는 걸까요?


통신사는 모르는 은행업의 본질

은행업은 매우 독특한 산업입니다.

은행만을 위한 은행법이 따로 있고

은행만을 위한 감독기관인 금감원이 따로 있고

은행만을 위한 인프라인 공동망이 따로 있습니다.


K뱅크가 24년만에 처음으로 인가받았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돈 있다고 아무나 맘대로 할 수 있는 사업도 아닙니다.

삼성도 못하고 현대도 못합니다.

도대체 은행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감히 은행업과 은행산업에 대해 이거다 저거다 한 칼로 잘라 논할 자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K뱅크가 하고 있는 움직임을 보면, 은행이라는 독특한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은행업의 원가 구조가 단지 은행원의 쪽수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돈을 맡기고 돈을 빌리는 메카니즘이 단순히 금리나 혜택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가 막힌 상품 만든다고 단번에 대박 내기도 어렵고

중금리 대출을 한다고 수익성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며

ICT 기술이나 통신사의 노하우를 이식한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도 아닙니다.


잘 모르겠네요,

남의 회사를 놓고 훈수 두는 게 맞는 일인지...

그런데 그냥,

그들이 보여준 놀라운 용기에 한 표를 꾸욱~ 던지고 싶습니다.


게임 좋아하는 어린 친구들이 쓰는 말 중에 '고인 물'이라는 표현이 있더군요.

은행업의 민낯과 속살을 잘 알고 있는 '고인 물'이 

K뱅크가 알면 참 좋겠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들이 진정,

'은행의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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