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실에서 구글까지
우리는 지금 넘쳐흐르는 ‘정보의 시대’를 살아간다.
검색 한 줄이면,
누군가의 과거부터 취향까지 추적할 수 있고,
SNS의 '좋아요'와 유튜브 '알고리즘'은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어떤 욕망에 끌리는지조차 말해준다.
그런데 이 정보 권력의 원형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우리는 '중세의 교회'를 떠올린다.
'고해성사실'.
어둡고 작은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신에게,
혹은 신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고백은 단순한 참회의 행위가 아니라,
가장 내밀한 정보를 자발적으로 제출하는 행위였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라는 공간에 정보가 축적되고, 권력이 형성되는 구조로 이어졌다.
고해성사는 마음을 치유하고 죄를 객관화시키는 심리적 기능도 갖지만,
동시에 '정보 수집과 감시의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 정보들이 축적될수록 교회는 더 많은 내면의 지도 체제를 갖고 권력을 쥐고 흔들었다.
그리하여 '정보'는 곧 '권력'이 되었다.
과거에는 고해성사실,
지금은 스마트폰 속 '위치기반 앱'과 '알고리즘'이 우리의 습관과 감정을 수집한다.
이전 시대의 교회가 '사적인 고백의 공간'을 통해 '권력'을 쌓았다면,
지금은 우리가 손에 쥔 스마트폰이 마치 '디지털 성당'처럼 작동하고 있다.
차이점은 있다면,
과거에는 고백하는 자가 ‘신’ 앞에서 자발적으로 무릎 꿇고 입을 열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알고도,
때로는 모르고도,
자발적으로 모든 것을 노출한다는 점이다.
과거 교회는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는 '권력의 건축'이었다.
예배 시간은 사람들에게 ‘정확한 시간 감각’을 주입했고,
예배당의 구조는 '행동을 통제'하고, '삶을 규칙화'했다.
오늘날의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정밀한 규칙 속에서 살아간다.
시간표, 앱 알림, 위치 추적, 클릭 수, 로그 기록 등.
이 모든 것이 현대판 고해성사실이자 디지털 예배당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기술 혜택에의 복종이 아니라,
그 구조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거리감 있는 시선'이다.
내가 있는 공간이 나를 어떻게 규정하고,
내가 쏟아놓은 이야기들이 어디에 쌓이고 있는지를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시간이다.
왜냐하면,
공간은 언제나 누군가의 권력이 되어왔고,
지금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으니까.
이상은 유현준 교수의 <공간 인간> 강의를 듣고 정리해 보았다.
https://suno.com/s/6BZad1oUzX6VUzkS
속삭이는 시간의 성당에서
작사: 콩새작가
작곡:수노
1절
종소리 울려 퍼지던 그 아침
빛보다 먼저 나를 깨운 공간
어둠 속 내 안의 비밀들
천천히 문을 열고 걸어가
회개의 말은 입술보다
고요한 침묵 속에 흐르고
눈 감은 채 나눈 이야기
신은 듣고 있었네, 오래전부터
여긴 속삭이는 시간의 성당
고해성사, 그 문틈 사이로
나는 벗겨지고 다시 쓰인다
기억은 기록이 되어 권력이 되네
2절
칠흑의 커튼 사이, 한 줄기 빛
내 이름은 말해지지 않아도
신부의 귀, 그리고 어둠의 문
정보는 흘러가고, 구조가 된다
누가 나를 이해했는가 보다
누가 나를 기록했는가의 싸움
진실은 드러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선택한 빛 아래 놓이는 것
여긴 속삭이는 시간의 성당
비밀이 무게가 되어 굴절되고
나는 흘러가고, 다시 조립된다
고백은 권력이 되어 나를 바꾼다
학교의 종소리, 성당의 종소리
그 소리들은 같은 리듬의 파동
시간을 맞춘다는 건
곧 움직임의 훈련이니까
여긴 속삭이는 시간의 성당
고백은 치유인 듯하지만
정보는 축적되고,
권력은 정지된 고백 위에서 자란다
나는 아직도 그 성당을 걷는다
이름 없이, 죄 없이
다만 기억을 가진 채로
한 조각 권력을 지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