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라면의 기억

by 남궁인숙

이십 대 때 일본에 와서 처음 맛본

'일본라면'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진한 육수와 쫄깃한 생면, 지역마다 다른

개성을 품은 국물은 분명 한국에서 익숙하게

먹어온 라면과는 확연히 달랐다.

같은 '라면'이라는 이름을 공유하지만,

그 속에는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었다.

한국라면은 전후 식량난 속에서 탄생하게

된다.

값싸고 간편한 한 끼로 국민의 일상을

지탱해 왔다.

그리고 매운 국물과 강렬한 맛으로 세계인

까지 사로잡으며,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1960년대 초, 한국은 여전히 전쟁의 상처

속에 있었다.

밥상 위에는 쌀이 부족했고, 미국에서 들어온

밀가루로 만든 빵과 국수가 낯설었다.

그러나 그 음식들은 한국인의 입맛을

채워주지 못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따뜻한 국물과 익숙한

양념을 그리워했다.


1963년, 단돈 10원짜리 봉지라면으로

시작된 '삼양라면'은 한 세대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다.

허기진 저녁마다 끓는 물에 담겨 퍼지던

노란 면발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희망의 맛이었다.


'이 라면은 이 땅에 어떻게 태어났을까?'


그때 한 사람이 일본 출장길에서 작은

한 봉지의 음식을 만나게 된다.

한국전쟁 이후 1950~60년대 초반,

한국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었다.

당시 정부는 미국 원조로 들어온 밀가루를

활용해 빵이나 국수를 보급했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아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렴하면서도 쉽게

조리할 수 있는 대체 식품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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