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
어제 뉴스에서 들었던 재판과정의 판결문.
지귀연 판사의 이 한 문장은 짧지만
무겁게 느껴졌다.
이 문장 속에는 도덕의 구조가 들어 있다.
명분과 행위, 신념과 선택, 그리고 인간의
양심이 교차한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산다.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
‘결국 좋은 결과를 위한 것이다.’
이 믿음은 때로는 위험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목적을 앞세우는 순간,
수단을 흐릿하게 보기 시작한다.
성경을 읽는 행위는 선(善)의 영역이다.
촛불을 훔치는 행위는 악(惡)의 영역이다.
이 둘은 결코 교환될 수 없다.
선을 위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단순한 종교적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를 향한 윤리적
경고로 들렸다.
정의를 말하면서 거짓을 택하는 순간,
공익을 외치면서 절차를 무시하는 순간,
신념을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촛불을 훔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법은 차갑다고들 한다.
그러나 법의 본질은 차가움이 아니라
일관성이다.
감정이 아니라 원칙으로 판단하는 태도.
아무리 고결한 목적이라도 위법을
용인하지 않는 태도.
이 말은 결국 우리 각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말이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재판과정에서 어떤
솔로몬 같은 지혜로운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지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이 엿보였다.
이 판결을 위해 얼마나 많은 판례를 찾아
헤맸을지 알 것 같은 내용이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가?
나는 선을 말하면서,
작은 악을 묵인하고 있지는 않은가?
도덕은 거대한 시험장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사소한 순간에 드러난다.
남의 아이디어를 조금 베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간,
세금 신고를 대충 넘어가도 괜찮다고
합리화하는 순간,
타인의 시간을 빼앗으면서도 ‘좋은 의도’
였다고 말하는 순간.
그때 우리는 촛불을 들고 있는가,
아니면 훔치고 있는가.
이 문장의 힘은 단호함에 있다.
선은 선의 방식으로만 이뤄질 수 있다.
빛은 어둠을 빌려 밝아질 수 없다.
그래서 이 말이 멋지다.
위엄이 있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신앙인에게도,
권력자에게도,
평범한 시민에게도.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
결국 인간의 품격은......
무엇을 이루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이루었는지에서 결정될 것이다.
https://suno.com/s/YfnQkvcMTFx5jC2s
촛불은 훔칠 수 없어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1
어두운 방 안에 작은 빛 하나
말씀을 읽고 싶어 켜고 싶었지
손을 뻗으면 닿을 듯했지만
그 빛은 내 것이 아니었어
좋은 뜻이면 괜찮다 말해도
마음 한편이 자꾸 흔들려
빛을 위해 어둠을 빌리면
그건 이미 빛이 아니야
음~~~~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어
선한 마음이라 말해도
잘못은 빛이 될 수 없어
빛은 빛의 길로 와야 해
어둠을 딛고 설 순 없어
2
정의를 말하며 고개를 들고
누군가의 것을 지나쳤다면
그 순간 내 손 위에 남은 건
따뜻한 빛이 아닌 그림자
작은 선택이 모여서
내 삶의 얼굴이 되니까
나는 오늘도 묻고 또 묻지
이 길이 정말 바른 길인가
음~~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어
선한 꿈을 꾼다 해도
거짓은 노래가 될 수 없어
빛은 스스로 타오를 때
비로소 세상을 밝히네
우~~
눈부신 결과보다
부끄럽지 않은 과정
나는 그 불씨를 지키며
천천히 걸어가
음~~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어
내가 선택한 오늘이
내일의 빛이 되니까
빛은 빛으로만 남아
끝내 나를 비추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